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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유관순 열사]일본 교과서에도 유관순 열사가 수록됐는데, 대한민국 교과서에는 없다니

문화재방송 2015. 2. 27. 02:01

아 ! 유관순 열사 !

1919년 

1월 22일  광무황제가 갑자기 서거하였다.

2월  8일  일본 동경 유학생 400여명이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독립선언을 하였다.(2.8독립선언)

3월  1일  3.1운동이 발발하였다. 유관순은 학교 담을 넘어 서울 시위운동에 참여하고 학교로 돌아왔다.

 

3월  3일  광무황제 국장례가 거행되었다. 이날은 시위가 자제되었다.

3월  5일  서울에서 학생단 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유관순은 이화학당 친구들과 함께

이 시위운동에  참여했다가 경무총감부에 붙잡혔다 풀려났다.

 

3월 10일 각급 학교에 휴교령이 내렸다.

3월 13일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고향 천안으로 왔다.  

3월 14~31일 유관순은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운동을 준비하였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각 부락을 다니면서 시위운동 참여를 권유하였다.

3월 14일 오후 4시 목천보통학교 학생 120명(목천 기미독립운동기념 사업회에서는

 171명이라 함)이 교정에서 시위운동을 하였다.

 

3월 31일 유관순, 매봉산에 봉화를 올렸다.

4월  1일(음력 3.1) 아우내 만세시위 발발하다.

아버지 유중권, 어머니 이소제, 숙부 유중무, 속장 조인원과 함께

             시위를 주도하였다.

오빠 유우석은 공주에서 시위운동에 참여하다 부상당해 붙잡혔다.

 

5월  9일 유관순은 공주법원에서 5년형을 받았다.

6월        유관순과 아우내 만세 주역들이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다.

이에 따라 유관순과 이들은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었다.

 

6월 30일 유관순은 경성 복심법원 재판에서 3년형을 언도받았다.

유관순은 상고를 포기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고등법원에 상고하였다.

8월 29일 유우석은 공주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9월 11일 유관순을 제외한 병천과 수신.성남지역 시위 주도자들의 상고가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었다.

11월 6~11일 정동 제일교회에서 열린 기독교 미감리회 조선연회에서

 천안지역 3.1운동 피해보고와 함께

             수감 교역자에게는 20원, 기타 수감자에게는 5원의 구제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1920년

3월 1일 오후 2시, 유관순이 서대문감옥에서 옥중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4월 28일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 결혼기념 특사령으로 형기가 절반인 1년 6개월로 단축되었다.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모진 고문에 의한 방광파열로 서울 서대문 감옥에서 순국했다.

10월 12일 이화학당에서 유관순의 시신을 인수하여 수의를 해 입혔다.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의 보통과 졸업 사진
1996년 이화여고에서 명예 졸업장을 추서하였다

 

 

유관순 열사를 지하 감방에 특별 수감하고 혹독한 고문을 자행했다. 

 
 

 

 

 

日帝 유관순열사 순국뒤 시신토막, 옥중 여성열사들 성고문도 자행

서울신문 | 입력 2006.11.02 09:00

[서울신문]일제가 강점기 당시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시신을 토막내 훼손하고, 독립운동을 하다 옥에 갇힌 여성 열사들을 성고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은 1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개관 8주년을 맞아 연 학술심포지엄

 '3·1운동기 여성과 서대문형무소'에서 밝혀졌다
서대문구(구청장 현동훈)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여성 열사들의 옥중투쟁과

 일제의 잔인한 고문상이 낱낱이 드러났다.
'유관순 열사와 서대문형무소'를 발표한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은 유관순 열사를 비롯,

여성들이 받은 고문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밝혔다.

7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 열사는 옥중에서도 만세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1920년 3월1일에는 3·1운동 1주년을 기해 옥중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유관순 열사는 이 일로 심한 고문을 당해 방광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고,

그해 10월 순국하게 된다.

이틀 뒤에야 소식을 들은 이화학당 교장 미스 프라이와 미스 월터가 형무소장에게 시신 인도를 요구하자,

일제는 시신 상태를 세상에 알리지 말 것 등의 조건을 붙여 마지못해 석유상자에 넣은 시신을 넘겨줬다.

 김 관장은 발표문 중 '고문방에서 토막살해 설도'라는 소주제에서 유관순 열사의 시신이 머리와 몸통, 사지 등

여섯 토막으로 잘려 있었고, 코와 귀도 잘려 있었다는 기록을 소개했다.

'간수들은 유관순이 고문에 못이겨, 아니 고문으로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살해 가능성을 언급하는 문헌도 인용했다.

일제의 만행은 단순히 물리적인 폭행에서 그치지 않았다.

 김 관장은 "간수들이 말린 황소의 생식기를 고문도구로 사용하다 좀처럼 굴복하지 않는 여성 열사들이 있으면 이 도구를 이용해 성기를 훼손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대동단 단원이었던 이신애 열사는 서간문과 구술자료에서  "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악명높았던 종로경찰서 미와 경사가 면상을 세게 내리치자 아래턱이 퍽 소리와 함께 왼편으로 돌아가 붙어버렸다.

 

아이쿠 하려 애를 써도 그때부터 전혀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신애 열사는 옥중에서 3·1운동 1주년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혹독한 전기고문을 받아 손목이 다 타버렸고, 끝내 임신도 할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newsview?newsid=20061102090016778

 

 

유관순 열사의 시신을 여섯 토막내 보관한 석유상자

 

- 유관순열사의 마지막 유언 -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 열사 초혼묘

이곳이 유관순열사의 초혼묘이다,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유관순열사가 순국하자,

 열사의 시신은 이화학당에 인도되어 오빠 유우석을 비롯해 스승과 동문들에 의해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으나

 이후 이태원 공동묘지가 일제의 군용기지로 쓰이게 됨에 따라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하는 가운데 열사의 주검은 흔적도 없이 망실되었다.

 이에 그 영혼이라도 편히 잠드시도록 초혼묘를 매봉산 중턱에 마련하였다.

 초혼묘는 6각의 뿔형태로 각 면에는 열사의 기도문을 비롯하여 비문이 적혀 있다

 

한국 교과서가 빼먹은 유관순, 日교과서는 어떻게 기술했나

  • 김아사
    프리미엄뉴스부 기자
    E-mail : asakim@chosun.com
    아사(阿斯)는 아침이란 뜻이다. 고조선의 도읍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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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9.02 05:06
    •  
    지난해 국사편찬위원회 검정을 통과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중 4종이 유관순 열사를 다루지 않아 논란이 된 가운데, 일본의 초·중·고 검정(檢定) 교과서에는 유 열사의 항일 운동 기록이 자세히 묘사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일 본지가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를 통해 입수한 일본 교과서는 3·1운동을 언급하면서 유 열사를 주도적 인물로 설명했다. 지난 1999년 오사카(大阪) 서적이 발행한 소학(우리의 초등학교 과정) 사회 6학년 교과서에는 “지난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16세 학생이었던 유관순은 고향으로 돌아가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서울의 독립운동을 얘기하고, 우리도 들고일어나자고 호소해 아우내 만세 운동을 주동했다”며 “일본군에 붙잡힌 유관순은 일본인은 우리를 심판할 권리가 없다, 죄인으로서 심판받아야 할 것은 일본인들이라고 재판정에서 진술했다”고 기술돼 있다.

    짓쿄(實敎) 출판이 지난해 발행한 고교 일본사 교과서는 “유관순은 투옥돼 1920년 10월 16세에 사망했다”고 전한 후 탑골공원에 있는 3·1운동 독립 부조를 가리켜 “일본의 무력 탄압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기술했다.
    짓쿄 출판의 교과서에 실려 있는 3·1운동 부조/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제공
    짓쿄 출판의 교과서에 실려 있는 3·1운동 부조/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제공
    이외에도 시미즈(淸水) 서원, 도쿄(東京) 서적, 테이코쿠(帝國) 서원, 니혼분쿄(日本文敎) 출판 등이 펴낸 중학교  교과서에도 유 열사를 언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교과서는 교육부가 집필진을 구성해 제작하는 국정(國定) 교과서와 출판사가 집필진을 자체적으로 꾸려 교과서를 만들고 이를 교육부에 승인 받는 검정(檢定) 교과서, 시도교육감의 승인을 받아 사용할 수 있는 인정(認定) 교과서로 나뉜다. 초등학교 역사 교과서는 국정, 중 고교 교과서는 검정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규정상 검정 교과서를 만드는 집필진에 유관순 열사 등 특정 인물을 무조건 포함하라고 강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가 검정 교과서 집필자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집필 기준을 제시하긴 하지만, 이 기준은 특정인을 서술하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 열사와 같이 항일운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을 교과서에서 아예 다루지 않는 것은 실수이거나 좌편향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곽정현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회장은 “일본의 교과서도 기술하는 유 열사의 항일 운동 기록을 우리가 외면하는 것은 독립운동 역사를 왜곡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출처:조선일보 

    [사설] 유관순마저 '친일파가 만든 영웅'으로 몰아가는 사람들

     

    입력 : 2014.08.28 03:03

     

    현재 고등학교에서 쓰이는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절반인 4종이 일제하 3·1 독립운동을 기술하면서 3·1운동의 상징적 인물 중 한 사람인 유관순 열사에 대해 한 줄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유관순에 대한 서술이 없는 교과서는 북한 정권 수립을 미화하고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해 논란을 일으켰던 좌편향 계열 교과서들이다.

    25일 교육부 주최로 열린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 개선안 토론회'에서 나온 춘천교대 김정인 교수의 발언을 보면 이렇게 된 사정이 짐작이 간다. 고려대 홍후조 교수가 "역사를 전공한 교과서 집필자들이 유관순 열사를 모를 리 없는데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일부러 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김정인 교수는 "유관순은 친일 경력이 있는 (이화여전 선배) 박인덕이 해방 후 발굴해 이화 출신의 영웅으로 만든 것"이라며 "북한에선 당연히 유관순을 모르고, 우리나라 교과서엔 1950년대에야 들어갔다는 게 최근의 연구 성과"라고 했다. 김 교수는 우파 성향 교학사 교과서가 발행된 이후

    이를 집중 공격해왔다.


    유관순은 고향 천안에서 3·1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가 붙잡혀 18세 나이에 감옥에서 숨졌다. 그의 부모도 독립 시위에 참여했다가 일제에 죽음을 당했다. 유관순은 유언에서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이라고 했다.

    유관순이 민족 독립의 제단(祭壇)에 목숨을 바친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도 좌편향 교과서 집필자들은 마치 유관순의 항일 행적이 조작되기라도 한 것처럼 교과서에 싣지 않았다. 김 교수가 "북한에선 당연히 유관순을 모른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왜 우리 교과서가 북한을 따라야 한다는 것인지 저의(底意)를 묻고 싶어진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27일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國定化) 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역사교육을 손아귀에 쥔 세력들이 이렇게 자기 입맛대로 아이들을 끌고 가려 하니까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발행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학교에서 유관순의 독립을 위한 희생을 가르칠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출처: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27/2014082704611.html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제96주년 3․1절 기념 행사 개최

    서대문구도시관리공단(이사장 변녹진/www.sscmc.or.kr)에서 운영하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는

    오는 3월 1일(일) 제96주년 3‧1절을 맞이하여 무료개방과 함께 전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인“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을 개최한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유지를 위해 ‘서대문형무소’라는 감옥을 어떻게 이용하였는지,

    또 일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치열한 투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적이자 박물관이다.

    따라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올바른 역사의식과 역사적 정체성을 함양하는데 기여하고 있으며

     전 인류사회에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고 일깨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역사의 현장이자 교육의 장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리는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은

    국민들에게는 애국심을 높이고 3·1독립운동을 통해 보여준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억할 수 있는 뜻 깊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대한독립 만세!” 독립국임을 전 세계에 선포, 비폭력 평화운동

    세계 최초의 평화 시위이며 모든 계층의 참여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던

    3·1독립만세운동! 3·1독립만세운동은 학생, 시민, 여성, 종교인 등 수만명이

     일본 군대와 경찰의 국권침탈과 탄압에 맞선 비폭력 비무장 평화운동이다.

    일제의 서슬퍼런 칼과 총 앞에 태극기와 맨손으로 평화운동을 전개했던 선조들!.

    3월 1일 당일에는 일제의 억압을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대한독립 만세’ 함성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가득 채웠던 그날의 아픔과 감동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3·1독립만세운동 재현 퍼포먼스’가 서대문형무소역관에서 독립문까지 이어진다.

    이번 퍼포먼스는 오전 11시에 진행되며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방문하는 관람객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3‧1절 기념 특별기획전

    ‘강병인의 글씨로 듣는 독립열사의 육성 말씀’

    또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는 3․1절을 기념하여 3월 1일(일)부터 4월 12일(일)까지 10옥사에서

     ‘강병인의 글씨로 듣는 독립열사의 육성 말씀’전시가 개최된다.

    제국주의에 맞서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투쟁하였던 독립운동가들의 시대정신을

    우리말과 글을 통해 되돌아보고자 마련한 본 전시회는 한글에 생명과 아름다움을 불어넣는

    캘리그래퍼 강병인이 독립열사의 육성 말씀을 글씨로 표현해 낸 작품 20여 점을 선보인다.

    “체험으로 느껴보는 우리 역사!” 체험 행사 풍성

    이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는 관람객들을 위한 풍성한 체험 행사도 마련된다.

    가죽 생활소품을 직접 제작해보는 “서대문형무소 트레이 & 카드지갑”, 펄러비즈 교구로 만드는

    “서대문형무소 입체 핸드폰 고리”, “독립군이 되어 활쏘기 & 태극기 책 만들기” 등

    차별화된 체험 프로그램은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또한 안성3․1운동기념관, 의암유인석유적지 등 독립운동 기념관이 참여하는

    “태극기 만세 가방 만들기” 등의 체험을 만나볼 수 있으며 서대문구 공예가들의 모임인

     “서대문구 수공예공방 네트워크 욤욤”이 참여하여 “태극기 비즈 팔찌”,

    “서대문형무소 바느질 컵받침”등 다채로운 체험을 한 자리에 풀어 놓는다.

    이 외에도 “서대문형무소 뺏지 만들기”, “독립선언서 등사”

    그리고 “독립운동가 코스튬 플레이” 등도 운영되며,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방문객은

    누구나 현장에서 체험이 가능하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관계자는 본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행사를 통해

    우리나라에 희망의 빛을 안겨준 선열들의 애국·애족정신을 가슴에 품고

    ‘그날의 함성’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프로그램>

     

    구분

    프로그램

    운영시간

    장소

    본 행사

    서대문 역사어린이합창단 공연

    11:00

    12옥사

    메인무대

    민족대표 33인 독립선언서 낭독

    11:30

    3․1독립만세운동 재현 퍼포먼스

    체험 프로그램

    독립운동

    기념관

    태극기 만세 가방 만들기(안성3ㆍ1운동기념관)

    전일

    경내

    부스

    삼일절 손수건 만들기(의암유인석유적지)

    최용신 상록수일기장 만들기(최용신기념관)

    서대문구 수공예공방

    네트워크 "욤욤"

    태극기 팔랑팔랑 비즈 팔찌 만들기

    서대문형무소 바느질 컵받침 & 가죽 목걸이

    설탕으로 만드는 태극기

    서대문형무소 입체 핸드폰 고리 만들기

    독립군이 되어 활쏘기 & 태극기 퍼즐과 책 만들기

    두드리며 팡팡! 서대문형무소 트레이 & 카드지갑

    독립선언서 등사하기

    서대문형무소 뺏지 만들기

    페이스 페인팅

    독립운동가 코스튬 플레이 & 사진인화

    추모글 이벤트

    전시

    강병인의 글씨로 듣는 독립열사의 육성 말씀(2015. 3. 1. ~ 4. 12.)

    10옥사

     

    문    의 : 02)360-85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