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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답사기

[문화유산 답사기]천연기념물 이야기...대한민국의 절경 '명승'을 찾아서 <7 >

문화재방송 2017. 8. 11. 00:54





■ 순천 초연정 원림 ■


지정번호 명승 제25호
소 재 지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삼청리 766 외
지정면적 66,441㎡
지 정 일 2007년 12월 7일
순천 초연정 원림은 순천시 송광면 삼청리에 위치해 있다. 왕대마을 모후산의 자연 계곡을 외원外苑으로 삼고 있는 초연정은 우리나라 정자가 대부분 풍경이 수려한 강변이나 구릉에 건축하여 확트인 경관을 감상하는게 목적인데 반해, 마을 뒷산의 깊은 자연 계곡을 이용하여 지어져 있어 매우 드문 예의 정자라 할 수 있다. 특히 초연정에서는 나무에 가려 계곡은 보이지 않으며 맑은 물소리만 들리는 것이 매우 특이하다.
초연정 앞의 모후산 자연 계곡은 유량은 많지 않으나 물이 맑고 인적이 드물어 주변의 아름다운 암반과 암벽, 암벽에 부착해 자라는 개서어나무 등 활엽수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자연미를 보여주며 자연환경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초연정과 초연정 앞 외원은 산간 계곡을 이용하여 지어진 특이한 별서로 전통적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조경사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주변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보존이 잘 되어 있어 경관적 가치가 큰 명승이다. 초연정의 외원이라 할 수 있는 모후산 자락의 계곡의 경관은 초연정과 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나타내고 있다.


초연정 건물은 전면 3칸·측면 1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팔작八作지붕이다. 초연정이라 쓰인 현판이 걸려있으며, 건물을 고쳐 지을 때 쓴 중수기와 시문 등이 편액으로 만들어져 걸려 있다. 주변 계곡에는 울창한 활엽수림이 초연정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순천 초연정 원림은 초연정 정자와 정자 주변의 외원을 함께 일컫는 것으로, 초연정은 1809년(순조 9) 조진충이 중창하여 옥천 조씨의 제각으로 사용하던 것을 이후 조진충의 아들인 조재호가 1880년에 중건하였으며, 1888년(고종 25) 연재淵齊 송병선宋秉璿(1836~1905)이‘초연정’이라 개칭한 정자이다.
초연정 원림이 위치하고 있는 왕대마을은 1361년(공민왕 10)에 공민왕 일행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유경留京’이라 하였으며, 왕대마을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서 피신하였다고 하여‘왕대王垈’라고 불렀다. 본래 초연정은 송광면 대광사의 승려가 수석정을 건립해 수도하던 자리에 지어진 정자이다.

■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 ■


지정번호 명승 제26호
소 재 지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93-1 외
지정면적 238,822㎡
지 정 일 2007년 12월 7일
안동시내에서 청송방면의 국도를 따라 11㎞ 정도 가면 임하보조댐이 나타난다. 안동 개호송開湖松숲은 임하 보조댐의 모퉁이를 돌아 마을로 가는 도로변으로 흐르는 낙동강 지류 반변천半邊川의 가운데 있는 섬 위에 조성되어 있다. 이 숲을 지나 좌측으로 보이는 곳이 천전리 내앞마을이다. 또한, 반변천의 북안에는 강물에 의해 퇴적된 모래톱을 따라 하천변에 길게 송림이 조성되어 있다.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은 개호송과 강변송림, 백운정 등을 포함하는 지역에 걸쳐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한국의 대표적 씨족 촌락인 내앞마을과 개호송, 강변 송림, 강 건너편의 백운정 등이 낙동강의 제1지류인 반변천과 어우러져 뛰어난 절경을 자아내는 경승지이다. 개호송은 댐 조성으로 인해 수몰될 위기에 처해 있었던 숲이다. 그러나 숲을 살리기 위해 임하보조댐으로 높아진 수위에 맞춰 숲 지역만을 보토하여 섬을 만들었지만 숲내 소나무의 생육상태는 양호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백운정白雲亭’(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5호)은 귀봉 김수일(1528~1583)이 1568년(선조 1)에 세운 정자로 반변천 강 언덕 위에서 내앞마을과 개호송 숲이 한 폭의 경관으로 조망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통적 유교문화 경관을 체험할 수 있는 탁월한 조망점 역할을 하고 있는 정자이다.


‘내앞마을’은 의성 김씨 씨족 촌락 마을로 의성 김씨 종택을 비롯하여 보물 2점과 고택이 잘 보전되어 있으며,『 택리지』에 전통 씨족 촌락으로 소개되어 있고, 약300년 전에 제작된 이종악의『허주산부군수화첩虛舟山府君水畵帖』에「운정풍범雲亭風帆」이라는 제목으로 마을의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는 등 500여 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개호송숲’은통례공通禮公만근萬謹이조선성종무렵에 내앞마을 앞 수구水口가 허술함을 메우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5년(선조 38) 대홍수 때 유실된 것을 운천김용의 발의로 다시 조성한 숲이다. 의성 김씨 문중에서는「개호금송완의開湖禁松完議」라는 문중 규약을 만들어 이 숲을 보호해 왔다고 전한다. 이 숲은 내앞 마을의 농경지를 보호하고 바람과 물의 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수구막이 숲이며, 완만한 모래사장에 달빛이 비추는 ‘완사명월형浣沙明月形’ 혹은 소가 누워 풀을 되새김하는 ‘와우형臥牛形’으로 알려져 있는 내앞마을 풍수형국의 모자람을 채우기 위한 비보림裨補林역할을 위하여 인위적으로 조성되어 보호하여 온 오랜 역사의 마을 숲이다.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은 강 건너편 백운정과 반변천 수중에 조성되어 있는 반월형 섬 위의 소나무 숲인 개호송 숲, 강가를 따라 조성된 내앞마을, 반변천과 강가의 기암과 단애, 천변 숲이 한눈에 펼쳐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아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대표적인 씨족 마을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가 큰 문화경관이다.


■ 양양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 ■


지정번호 명승 제27호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산5-2 외
지정면적 74,593㎡
지 정 일 2007년 12월 7일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속초 방향으로 올라가면 바닷가를 따라 길게 조산리 송림이 낙산해수욕장을 따라 펼쳐지고, 낙산해수욕장이 끝나는 부분에 낙산(오봉산)이 솟아 있으며, 이 낙산으로부터 낮은 구릉이 바다를 향해 뻗어 있다. 양양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은 이 구릉의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양양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은 의상대에서 홍련암에 이르는 해안지역에 걸쳐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동해안의 기암절벽, 품위 있는 송림, 고색창연한 정자와 절집 등이 어우러진 빼어난 경관과 함께 동해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특히 아름다운 일출경관으로 매우 유명한 곳이다. 의상대와 홍련암은 수직으로 형성된 바닷가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 노송老松들이 자리하고 있어 동해안의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이다.
또한 이곳은 장엄한 일출경관을 보기 위해 수많은 여행객이 찾는 곳이다. 그러나 낙산사 주요 경관 요소이던 낙락장송이 2005년 강원 지역의 큰 산불로 소실되어 경관이 크게 훼손되었으나, 다행히 의상대 및 홍련암 주변 해안절벽 부분의 경관은 크게 훼손되지 않은 상태이다. 의상대와 홍련암의 해안절벽은 시스택(Sea Stack)이 발달하여 독특하고 아름다운 해안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사진
양양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은 송강 정철(1536~1593)의「관동별곡」에 소개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이다. 낙산사는 671년(문무왕 11)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의상대 뒤편의 구릉 위에 자리하고 있다. 858년(헌안왕 2) 범일(810~889)이 중건한 이후 몇 차례 다시 세웠으며,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낙산사는 3대 관음기도 도량 가운데 하나이며, 경내에는 조선 세조 때 세운 7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낙산사는 2005년 4월 6일에 일어난 큰 산불로 인해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어 다시 중건하고 있다.
의상대는 창건 당시 의상대사가 좌선했다는 해안 암벽 위에 의상대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육각으로 만들어진 아담한 규모의 의상대는 낙산사에서 홍련암 관음굴로 가는 길의 해안절벽 위에 있어 좋은 조망을 형성하고 있다.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홍련 속의 관음보살을 친견하여 설치하였다고 하며, 관음굴이라고도 한다.
홍련암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신라 문무왕 12년 의상이 입산을 하는 도중에 돌다리 위에서 파란 색깔의 새를 보고 좇아 갔는데, 새가 석굴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의상이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바위 위에 정좌하고 기도를 드렸다. 이렇게 7일 7야 동안 기도를 드리자, 깊은 바다 속에서 홍련(붉은 연꽃)이 솟아 오르고 그 속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났다.
의상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소원을 기원하니 만사가 뜻대로 성취되었으므로, 이곳에‘홍련암’이라는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의상대, 홍련암 등을 비롯한 낙산사는 곳곳에 의상대사와 관련한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낙산사는『관동십경』에 옛 모습이 잘 남아 있고,『 삼국유사』·『동문선』·『동국여지승람』등의 고
문헌에 많은 시인묵객 등의 낙산사 창건 및 중수 기록과 유람기, 경관을 노래한 시문의 기록이 다수 전해지고 있는 역사문화적 가치가 큰 명승이다.


■ 삼척 죽서루와 오십천 ■


지정번호 명승 제28호
소 재 지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 28 외
지정면적 37,321㎡
지 정 일 2007년 12월 7일
삼척 죽서루와 오십천은 죽서루와 오십천의 절벽, 강물 등의 지역이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삼척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오십천의 하천경관 중에서 가장 절경을 이루는 장소로 알려진 곳이다. 죽서루에서 내려다 보는 오십천 경관과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죽서루와 절벽, 강물이 어우러진 경관은 매우 아름답다. 오십천은 삼척시 도계읍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삼척시를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가는 동해안에서 가장 긴 하천이다. 또한 오십천은 감입곡류로 사행하고 있는 하천으로, 오십천 협곡의 암벽들은 대부분 전기 고생대에 생성되어 오랜 기간 하천의 작용으로 현재와 같은 다양한 석회암지대 지형의 모습을 보여주고있으며,‘ 오십천’이란 이름은 발원지에서 동해에 이르기까지 50여 번 돌아 흐른다고 하여 붙은것이라 한다. 죽서루가 위치하는 곳은 오십천의 협곡이 끝나려 하는 부위로 오십천과 주변 협곡, 죽서루 절벽 배후의 카르스트 지형과 길게 늘어진 송림 등이 태백산지와 함께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내고 있는 곳이다. 오십천은 삼척시를 흐르는 하천으로‘삼척 오십천’이라고도 하며, 길이 46.6㎞, 유역면적 350.16㎢이다. 도계읍 구사리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도계읍에서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이며, 하구 부근의 하천변에 죽서루가 위치하고 있다.


삼척 죽서루와 오십천은 양양 낙산사 의상대와 함께 송강 정철(1536~1593)의「관동별곡」에 소개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이다. 죽서루 누각은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이승휴(1224~1301)의『동안거사집』에 의하면, 1266년(원종 7)에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죽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후 1403년(태종 3)에 삼척부사 김효손이 옛 터에 의거하여 중창한 것이라고 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차례에 걸쳐 중수, 증축되었다. 죽서루는 정면 7칸·북쪽 측면 2칸·남쪽 측면 3칸의 특이한 형태의 누 건물이며 현재 보물 제213호(1963년 1월 21일 지정)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죽서루의 동측에는 죽림이 있고, 죽림 속에는 죽장사竹藏寺가 있었다고 하여 죽서루라고 명명되었다고 한다. 누각의 전면에 게시된‘죽서루竹西樓’와‘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현판은 1715년(숙종 41) 삼척부사 이성조의 글씨이고, 누각 내에 걸려 있는‘제일계정第一溪亭’이라는 현판은 1662년(현종 36) 삼척부사 허목의 글씨이다. 현재 누각 내에는 허목의「죽서루기竹西瘻記」, 홍백련의「죽서루중수기竹西樓重修記」와 정조의「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한 경관시를 기록한 다수의 편액이 걸려 있다.
삼척시에는 정월 대보름에 민속놀이로서 삼척기 줄다리기를 오십천 변에서 행하고 있다. 기줄이란 게줄을 의미하는 어휘로서, 기둥이 되는 큰 줄에 작은 줄이 매달려 마치 게의 발처럼 보인데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기줄다리기는 즉 게줄싸움을 의미하며, 삼척기줄다리기는‘삼척게줄싸움’이라고도 한다. 1662년(현종 3) 삼척부사로 있던 허목이 오십천에 제방과 저수지를 만들면서, 가래질에 필요한 새끼줄을 힘들이지 않고 많이 만들고, 마을 전체가 참여하여 일을 쉽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된 놀이이다.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문화재대관-천연기념물]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문화재방송 캠페인]문화재에는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숨 쉬고 있습니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휴일이면 가족과 더불어 각종 문화재와 함께 하여 민족의 숨결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이달의 대문

경주 대릉원 일원(慶州 大陵園 一圓, 사적 제512호)

경북 경주시 노동동 261 등지에 있는 신라 시대의 고분군(新羅時代 古墳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