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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답사기

[문화유산 답사기]이제 여행의 계절,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 명승을 찾아서(1)

문화재방송 2022. 4. 21. 05:51

 

 

 

■ 명주 청학동 소금강 ■

 

 

지정번호 명승 제1호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산1-12 외
지정면적 23,971,684㎡
지 정 일 1970년 11월 23일


명주 청학동 소금강은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백두대간의 능선을 중심으로 경사가 급한 동쪽 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설악산, 오대산으로 흘러내린 백두대간의 능선에 노인봉(1,338.1m), 황병산(1,407m), 매봉(1,173.4m)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북쪽에 위치한 노인봉을 정상으로 하여 동쪽으로 분지된 산줄기가 백마봉(1,094m)을 거쳐 연곡면 장천리 방향으로 흘러내리고, 남쪽의 매봉으로부터 다시 분지된 산줄기가 천마봉(999m)을 지나 연곡면 유동리 방향으로 흘러내려, 아래 위에서 흘러내린 능선은 서로 맞닿을 듯 좁아들고있다. 이 능선의 중앙으로 연곡천의 상류의 지류인 청학천이 흐르고 있으며, 이 능선 안쪽에 해당하는 지역을 청학동 소금강이라 한다.

 

지리적으로 보면, 소금강의 산계는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산 사면은 대체로 직선상이고 급경사를 이룬 곳이 많으며 만장년기에 속한다. 지질은 선캄브리아누대의 편암류 및 편마암류와 중생대 쥐라기의 화강암류로 구성되어 있다. 소금강의 지형은 주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들이며 유로 낙차가 1,200m나 되는 경사가 매우 급한 험준한 협곡을 이루고 있다. 노인봉이나 동대산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유입되는 청학천이 곳곳에 폭포를 형성하고 있어 그 주변의 울창한 산림경관은 풍치를 더욱 아름답게 한다. 소금강에는 청학천을 따라 여러 개의 경관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다.


용수폭포·삼폭포·광폭포·이련폭포·천폭포·낙영폭포 등의 아름다운 폭포가 자리하고 있고, 용소·금강문·십자소·연자대·무릉계·청심대·옥류동·식당암·만물상·선녀탕·백운대·오작담·왕관대·망군대·학소대·희암대·천도대·비룡대 등의 빼어난 경관을 수없이 간직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소나무·굴참나무·자작나무·철쭉나무를 포함한 129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는데, 특히 좀고사리의 자생이 특이하다. 산양, 사향노루를 비롯한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들과 새·물고기 등이 이곳에서 서식하고 있다. 간혹 까막딱다구리도 찾아볼 수 있다.

 

 

본래 이 산의 이름은‘청학산’이었는데, 산의 모습과 경치가 금강산을 닮았다 하여 1569년(선조 2) 잠시 강릉에 내려와 있던 조선 중기 학자인 율곡 이이가‘소금강’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이는「청학산기靑鶴山記」라는 기행문을 통해 스스로 명명한 수많은 명소와 그곳에 대한 자세한 해설과 감상을 기록하였다. 소금강에는 현재 1,000여 년 전에 통일신라의 마의태자가 생활하였다는 아미산성을 비롯하여 고구려 축성식인 금강산성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고, 사형장·수양대·대궐터·연병장·망군대 등 문화경관 요소들이 위치하고 있다.

 

 

 

■ 거제 해금강 ■

 

 

지정번호 명승 제2호
소 재 지 경상남도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산1 외
지정면적 223,992㎡
지 정 일 1971년 3월 23일


거제시의 남단에서 동측으로 돌출된 지형인 갈곶乫串이 있는데, 거제 해금강은 갈곶의 끝 부분에 위치한 무인도이다. 이 섬은 두 개의 큰 바위섬이 서로 맞닿고 있으며, 거제도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다. 섬의 동남부는 깎아 놓은 듯한 절벽으로 그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이 바위절벽은 아름다운 색채의 벽으로 둘러 싸여 있기도하고 수직으로 선 바위 군이 총석을 이루기도 하며, 이 절벽은 바위가 갈라진 틈으로 들어 온 푸른 바닷물과 함께 절경을 이루고 있다. 섬 주위의 바닷물은 맑고 푸르며, 옛날의 신비를 간직한 십자동굴을 비롯하여 석문·사통굴·일월봉·미륵바위·사자바위 등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다. 동굴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통하게 되어 있고, 크고 작은 해로의 문이 있어‘십자동굴’이라고 한다.

 

북쪽과 동쪽에 있는 굴에는 배가 서로 통하는 해상의 만물상 석문이 있으며, 남쪽 동굴은 100m의 동굴로 간조 때는 사람이 걸어서 지나갈 수도 있다. 기암괴석의 절벽 위에는‘천년송’이라 불리는 작은 소나무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라고 있으며, 바위절벽에는 동백나무·구실잣밤나무·풍란·석란·박쥐란등이 생육하고 있다. 이곳에서 통영에 이르는 해역은 모두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이 섬의 동쪽으로는 임진왜란 때 이충무공 해전으로 유명한 옥포만이 있고 서쪽으로는 한산도와 접해 있다.

 

 

 

‘거제 해금강’의 명칭은 그 모습이 각각 다르고 아름다워서 마치 금강산의 해금강을 연상하게 한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제2의 해금강’또는‘거제의 해금강’이라고 부르며, 섬의 원명은 갈도葛島였으나, 강원도 금강산에 연해 있는 해금강과 같이 아름답다 하여‘거제 해금강’으로 불리게 되었다.

 

해와 달이 이곳 바위 위에서 뜬다고 하여 일월관암日月觀岩, 병풍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병풍바위, 신랑 신부가 마주서서 전통결혼식을 올리는 모습과 같다 하여 신랑신부바위·돛대바위·거북바위·미륵바위 등으로 불리어진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서불徐市에게 동남 동녀 3,000명을 거느리고 해금강에 왔다가 경치가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도취되어 돌아가지 못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서,‘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글을 바위에 남겼으나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바위가 유실되었다고 전해진다.

 

 

■ 완도 정도리 구계등 ■

 

 

지정번호 명승 제3호
소 재 지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정도리 151, 앞 해면 일대
지정면적 152,925㎡
지 정 일 1972년 7월 26일

 

완도 정도리의 구계등은 전남 완도군 완도읍의 서남쪽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해안은 오랜 세월동안 바닷물에 씻긴 둥근 자갈이 해안선을 따라 넓게 쌓여 있고, 그 뒤로는 상록수림이 길게 선형으로 분포하고 있다.
정도리 구계등은 남해의 거친 파도에 깎이고 다듬어진 다섯 종류의 아름다운 갯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갈은 하나같이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자갈로 이루어진 해변의 길이는 750여 m, 폭은 80m 정도이며, 자갈은 지름이 작은 것으로는 10㎝ 내외에 해당하는 것부터 큰 것은 30㎝를 넘는 것도 있다. 이러한 자갈들은 상록수림의 안쪽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경사면을 따라 해수면 안쪽까지 형성되어 있다. 파도에 의해 형성된 이 자갈사면은 수평 방향으로 여러 개의 계단과 같은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 뒤쪽으로 형성된 상록수림은 완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해안 지역에서 자주 발견되는 난대림으로서, 난대의 식물상을 잘 갖추고 있는 숲이 형성되어 있다. 40여 종의 상록수와 단풍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하층식생도 잘 발달되어 있다. 정도리 구계등의 해변은 양쪽으로 활 모양의 해안선이 그대로 뻗쳐 감싸는 모양의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다.

 


정도리 구계등은 오랜 세월동안 바닷물에 씻겨서 둥근 형태의 모양으로 만들어진 자갈들이 거센 파도에 의해 해안의 경사면을 이루고 쌓여 있는데, 그 이름에 대한 유래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파도에 밀려 해안사면에 나타난 자갈밭이 마치 아홉 개의 계단과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해서‘구계등九階燈’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 신라 흥덕왕(?~836) 때에 해상왕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였는데, 주민들로부터 구계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신라 조정에서 이 지대를 녹원지로 봉하였다고 한다.

 

국가 명승 제4호와 제5호는 없습니다.

 

국가 명승 제4호와 5호는 1998년 12월23일 해제되었습니다.

 

해제 되기 전 국가 명승 제4호는 해남 두륜산 일원이었습니다.

 

능허대에서 본 가련봉의 모습입니다.

 

두륜봉에서 본 가련봉과 능허대의 모습입니다.

 

국가 명승 제4호였던 두륜산 일원은 1998년 12월 23일 해제되었는데 그 이유는 4호였을 때 「 해남 두륜산 일원」을 1998년 12월 23일 사적및 명승을 재 분류하면서 명승 제4호 「 해남 두륜산 일원」을 해제시키고 명승 제66호 「두륜산 대흥사 일원」으로 대흥사를 포함시켰습니다.

 

대흥사 전경입니다.

 

 

해제 되기 전 국가 명승 제5호는 송광사 선암사 일원이었습니다.

 

송광사 대웅전으로 가려면 홍예교 위에 지은 전각인 우화각을 지나야합니다.

해강 김규진선생이 쓴 송광사 편액

해강(海岡)은 외삼촌인 서화가 이희수(李喜秀)에게 글씨를 배웠고 대한제국 때는 왕세자인 영친왕의 사부가 되어 글씨를 가르쳤는데 창덕궁 희정당에는 김규진 선생의 벽화가 좌측에는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와 우측에는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가 있는데 고종황제는 금강산을 그리라고 명하자 김규진 선생은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금강산을 3번이나 다녀왔다는 일화가 있으며 특히 해인사의 '가야산해인사'(伽倻山海印寺), 부벽루의 '금수강산'(錦繡江山), 서울의 '보신각'(普信閣), '등이 김규진 선생이 남긴 작품인데 송광사의 작은 편액이 해강 김규진 선생의 글씨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송광사 대웅전입니다.

 

선암사 대웅전(仙巖寺 大雄殿)으로 2001년06월08일 지정된 보물 제1311호 대웅전은 조선시대 정유재란(1597)으로 불에 타 없어져 현종 1년(1660)에 새로 지었고 그 후 영조 42년(1766)에 다시 불탄 것을 순조 24년(1824)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대웅전은 선암사의 중심 법당으로 그 앞에 만세루와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선암사 일주문입니다. 

 

국가 명승 제5호였던 송광사 선암사 일원은 1998년 12월 23일 해제되었는데 그 이유는 5호였을 때 「 송광사 선암사 일원」을 1998년 12월 23일 사적및 명승을 재 분류하면서 명승 제5호 「 송광사 선암사 일원」을 해제시키고 명승 제65호 「조계산 송광사 선임사 일원」으로 조계산을 포함시켰습니다.

 

조계산 정상 장군봉의 모습입이다. 

 

장군봉에서 송광사로 가는 길에 있는 비룡폭포입니다.

조계산 최고봉인 장군봉을 가운데 두고 조계종의 본산인 송광사와 태고종의 본산인 선암사가 동서로 들어서 있습니다.

 

 

■ 울진 불영사 계곡 일원 ■

 

 

지정번호 명승 제6호
소 재 지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 산121 외
지정면적 17,835,806㎡
지 정 일 1979년 12월 14일

 

울진 불영사 계곡 일원은 울진군 서면 하원리부터 근남면 행곡리에 이르는 동서 15㎞의 계곡 일대를 지칭한다. 영주에서 봉화를 지나 울진으로 연결되는 36번 국도가 불영사 계곡을 따라 개설되어 있으며, 명승지정 구역의 서쪽 끝 부분에는 신라 진성여왕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불영사가 입지하고 있다.

 

불영사 계곡 일원에는 창옥벽·의상대·산태극·수태극·조계등·부처바위·중바위·거북돌·소라산 등 기묘한 형태의 자연경관이 다수 위치하고 있다. 불영사 계곡을 따라 아름다운 경승지들이 연계경관으로 이어지는데, 이 경관 요소들은 36번 국도를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조망지점에서 볼 때, 아래 방향으로 조망루트가 형성되는 부감俯瞰경관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불영사 계곡 및 그 주변 지역의 산지에는 오랫동안의 침식과 지반의 융기 혹은 해수면의 변동에 의한 영향으로 영·장년기 혹은 노년기에 나타나는 지형적 특징이 발달하고 있다.

 

이 구간의 하천은 심한 감입곡류嵌入曲流를 형성하며, 계곡 아랫부분과 양쪽 절벽의 백색화강암에 발달한 절리와 단층 등의 형태가 드러나 아름다운 지질구조를 나타내고 있고, 하상은 깊게 패여 구혈 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남방계와 북방계의 동·식물이 공존하는 곳으로 북쪽 지역의 산양이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살기도 하고, 특히 보기 드문 꼬리진달래와 백리향을 비롯해 641종류의 식물이 생육하고 있다. 식생의 군집구조로는 소나무 군락이 가장 크게 형성되어 있다. 부분적으로 굴참나무, 졸참나무 등이 소나무와 경쟁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식생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동물상으로는 조류 75종·어류 42종·포유류 28종·나비 30종·거미류 94종이 서식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불영사 계곡 일원은 기암괴석이 운집하고 있는 계곡 사이로 항상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청량한 경승지로서, 기암절벽과 울창한 송림·맑고 청아한 계류·강바닥의 자갈과 바위 등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연출하고 있는 명승이다.

 


불영사 계곡은 서면 하원리 천축산에 위치한 불영사로 인해서 지어진 명칭이다. 불영사는 구룡폭포 근처 금강소나무 숲 속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절은 신라 651년(진덕여왕 5)에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구룡사라고 하였는데, 부처의 그림자가 절안 연못 위에 비치고 있다고 하여‘불영사佛影寺’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조선 중기 목조 건물인 응진전이 보물 제730호로 지정되어 있고, 대웅보전·극락전·명부전·조사전 등이 근래에 복원되었으며, 창건 당시의 유적으로는 대웅보전 앞의 삼층석탑이 있다. 불영사 인근에는 조선시대 승려인 양성당선사의 부도인 불영사 부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2호)가 위치하고 있고, 불영사 은행나무·느티나무 등의 노거수가 자라고 있다. 또 주변 일대에는 천연기념물 제96호로 지정된 굴참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 여수 상백도·하백도 일원■

 

 

지정번호 명승 제7호
소 재 지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산30 외
지정면적 3,227,745㎡
지 정 일 1979년 12월 14일

 


여수 상백도·하백도 일원은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28㎞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백도는 멀리서 보면 섬 전체가 온통 흰색으로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39개의 무인도로 구성되어 있고 상백도군과 하백도군으로 나뉜다. 상백도군과 하백도군의 규모는 비슷하고 봉우리가 조금 높은 상백도에 무인등대가 설치되어 있다. 섬과 바위는 모두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고 있고, 이러한 절벽은 마치 병풍과도 같이 둘러쳐져 있다.

 

백도는 바위의 형상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해안지형, 지질학적으로 귀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해식애·파식대·해식동·씨아치(Sea arch) 및 타포니(Tafoni) 등의 지질학적 특징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지역이다. 거문도 어장의 중심 지역으로 조기·갈치·돔·민어 등의 조업으로 유명한 백도에는 까마귀쪽나무·동백나무·보리똥나무·닥나무·눈향나무 등 350여 종의 식물군이 자생하고 있어 기암괴석의 백도풍광을 한층 아름답게 하고 있으며, 또한 소엽풍란·장수란·당채송화 등 귀중한 아열대 식물들도 자라고 있다.

 

백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이기 때문에 천연기념물 제215호로 지정된 흑비둘기를 비롯하여 팔색조·휘파람새·장박새·동박새·가마우지·바다직박구니 등 30여 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또한 바다에는 붉은 산호초 층이 펼쳐져 있어 청정한 바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백도白島’라는 이름은 섬의 봉우리가 백百개에서 하나一가 모자라 흰 백자를 썼다고 하기도 하며, 멀리서 바라보면 섬 전체가 흰 빛을 띠고 있는 형상에서 백도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이와 함께 태초에 옥황상제의 아들이 상제의 노여움을 받아 귀양을 왔는데, 상제의 아들은 용왕님의 딸에 반해 풍류를 즐기며 세월을 보냈다.

 

옥황상제는 아들을 뉘우치게 하려고 인간 세상에 귀양을 보내기는 하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아들이 몹시 보고 싶어졌다. 신하들을 내려 보내 아들을 데리고 오게 하려 하였지만, 내려 보낸 100명의 신하들마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상제는 그들을 모두 벌주어 크고 작은 섬이 되게 하였는데, 바로 이 섬들이 상백도, 하백도라고 한다.

 

백도는 섬의 봉우리와 바위의 특이한 생김새에 따라 다양한 명칭이 붙어 있다. 상백도군에는 왕관바위·매바위·물개바위·삼선암·병풍바위·형제바위·오리섬·노적섬·탕근대 등의 이름을 가진 바위가 위치하고 있고, 하백도에는 거북바위·원숭이바위·촛대바위·서방바위·각시바위·궁성바위·석불바위 등이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으며, 이 바위들은 푸른 바다와 어울려 한 폭의 풍경화를 연출하고 있다.

 

 

 

■ 옹진 백령도 두무진■

 

 

지정번호 명승 제8호
소 재 지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연화리 255-1 외
지정면적 1,923,712㎡
지 정 일 1997년 12월 30일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에 위치한 두무진은 오랫동안 지질작용과 파도의 침식에 의해서 이루어진 독특한 해안 지질경관을 소유하고 있다. 두무진에는 병풍같이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과 가지각색의 기암괴석이 솟아 있다. 코끼리바위·장군바위·신선대·선대암·형제바위 등 온갖 모양의 바위가 바다를 향해 늘어서 있어 마치 기암괴석의 무리가 서로 어울려 해안절경을 연출하고 있다.

 

두무진은 퇴적암에 속하는 사암이 변성된 규암이 풍화·침식되어 이루어진 것으로서, 마치 시루떡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기도 하며, 이러한 여러 형상의 바위들은 오랜 침식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30~40m 높이의 암벽에는 해국海菊이 분포하고, 빈약하긴 하지만 해안에는 염생식물인 도깨비고비·갯방풍·땅채송화·갯질경이가 자라고 있다. 또 큰 바위 틈에서 범부채(붓꽃과의 다년초)가 자라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백령도는 서해의 가장 북쪽에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섬이다. 이 백령도의 북서쪽에 있는 포구가 두무진인데,‘ 뾰족한 바위들이 많아 생긴 모양이 장군의 머리와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령도'는속칭‘몽고종다리’의 소도小島 백령성白翎省과 관련하여 생각하기도 하지만, 원래 이름이던 곡도鵠島의‘따오기鵠가 흰 날개를 펼치고 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또한 이곳 연화리蓮和里는 이마을 앞에‘연당蓮塘’이라는 긴 연못이 있었는데‘연꽃이 많이 피는 못’이 있는 곳이라 하여‘연지동蓮池洞’으로 불리어 오다‘연화리’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두무진’의 명칭은‘뾰족한 바위들이 많아 생김새가 머리털 같이 생겼다’하여‘두모진頭毛鎭’이라 불렀다가 이후에‘장군머리와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하여‘두무진’이라고 개칭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두무진은 오랜 세월 동안 파도에 의해서 이루어진 병풍같이 깍아지른 듯한 해안절벽과 가지각색의 기암괴석이 솟아 있어 강원도 금강산의 만물상과 흡사하여 육지로 가거나 배를 타고 이곳을 지나가면 잠시 세상을 잊게 되고 맑고 깨끗한 바닷물에 의해서 속세를 깨끗이 씻어내는 듯한 아름다운 결정으로‘서해의 해금강’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또한 파도의 침식으로 빚어진 코끼리바위·장군바위·신선대·선대암·형제바위 등 온갖 모양의 바위가 바다를 향해 늘어서 있어 홍도의 기암과 부산 태종대를 합쳐 놓은 듯 하며 선대바위를 보고, 1612년(광해군 4)에 이대기는『백령지』에서‘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기이함이 빼어난 곳이다.

 



■ 진도의 바닷길 ■


지정번호 명승 제9호
소 재 지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의신면 일원 해역
지정면적 3.826,374㎡
지 정 일 2000년 3월 14일
전남 진도의 동남쪽에는 간조 시에 육계도가 형성되는 ‘진도의 바닷길’이 있다. 진도의 바다 갈림 현상은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의 바다에서 나타나고 있는 특이한 자연현상이다. 일명‘신비의 바닷길’로도 불리는데 진도와 모도 사이의 바다가 달과 태양의 인력引力·해안지형·해류의 흐름 등에 의해 길이 2.8㎞, 폭 10~40m로 갈라진다.

 

이는 유동하는 해류의 영향으로 바다 밑에 육계사주陸繫砂州(모래언덕)가 발달하고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바닷물이 낮아질 때 모래언덕이 수면 위로 드러나 마치 바다가 갈라진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이 진도의 바닷길은 해수면이 현재에 도달한 약3,000~4,000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진도의 바닷길의 퇴적물은 암석쇄설물과 패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퇴적물은 모도와 회동리의 연안 암석이 강한 파도에 의해 부서지고, 이 부서진 암석은 조류의 흐름에 의해 회동리쪽과 모도 쪽에서 진도의 바닷길에 부가되어 형성되었다.

 

또한 진도의 바닷길은 주변보다 높아 북동 지역에 와류를 발생시켜, 바지락이 대량 서식하게 하는 역할도 하였으며, 이 바지락은 죽은 뒤에 패각을 바닷길에 공급하였다. 1990년대 초와 2003년의 지형을 비교하면, 회동리 연안에서 모도 방향으로 약 800m 구간의 높이가 약 40㎝ 정도 낮아졌다고 한다. 지형이 낮아진 것은 진도 영등제 때 관광객이 지나치게 몰려 과도한 답압에 의해 훼손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육계사주는 주변 지역에 해안도로나 옹벽 등이 건설되어 답압에 의해 낮아진 육계사주가 자연적으로 제 모습을 복원하고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으로서,현재는 육계사주의 보존을 위한 유지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육계사주 주변의 해역에서는 바지락·새조개·진주담치·꼬막·굴·흰삿갓조개·큰구슬우렁이·긴고둥·피뿔고둥·고막류·가리비류 등 다수의 유용 저서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2003년). 이러한 사주 지역 주변의 저서생물을 보호하는 것은 육계사주의 보존에 직접적인 관련을 지니고 있는 사항으로서, 저서생물의 생태적 지속성 유지라고 하는 차원에서 육계사주의 활용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진도 주민들은 예로부터 바닷길이 가장 크게 열리는 봄(2~4월)과 가을(9~10월)의 그믐과 보름사리 때 마을의 수호신인 뽕할머니와 용왕에게 어업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영등제靈登祭를 지내왔다. 진도지방의 전통축제인 영등제는 진도의 모든 전통예술을 보여주는 종합축제로 발전되어 개최되고 있으며, 매년 3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영등제와 진도의 바닷길을 보러 찾아오고 있다.


진도의 바닷길은 1975년 프랑스 대사를 지낸 ‘피에르 랑디’가 이를 보고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프랑스 신문에 소개한 뒤 세계적인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이곳 외에도 충남 보령의 무창포를 비롯하여 전국에 약 20여 곳에서 바다 갈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진도의 바다 갈림 현상이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삼각산 ■


지정번호 명승 제10호
소 재 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1-1,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
지정면적 274,143㎡
지 정 일 2003년 10월 31일
삼각산은 서울시 강북구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북한산 산군에 속하는 산봉우리의 일부로서, 백운대白雲臺(836.5m)·인수봉人壽峰(810.5m)·만경대萬鏡臺(787.0m) 등 북한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산봉이다.

 

삼각산은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북쪽에 인수봉, 남쪽에 만경대의 3봉이 삼각형의 형태로 위치하고 있어 삼각산이라 불러졌다고 한다. 삼각산은 강원도의 백두대간으로부터 갈라져서남 방향으로 굽이쳐 흐르는 한북정맥이 경기도 양주군 남쪽에 도봉산으로 일어선 후 다시 우이령에서 등을 낮추었다가 서울 북방에 이르러 높게 솟구쳐 오른 산이다.

 

삼각산은 중생대 쥐라기에 관입한 대보화강암류(흑운모 화강암 또는 화강섬록암)로 구성되어 있으며, 형상을 달리한 화강암 돔(Granite dome)을 이루고 있다. 이 산은 화강암의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산봉의 모습이 서로 어우러져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돔을 형성하는산 사면의 경사는 대체로 70°이상에 달하고 있다. 삼각산은 다양한 등반코스가 있어, 암벽등반을 비롯하여 많은 등산객들이 등반하고 있으며, 백운대의 정상에는 약500㎡의 평탄한 곳이 있어 많은 등산객들이 쉬어 가기도한다. 만경대는 옛 이름이 국망봉이라 불리어졌으며 정상부의 산세는 불규칙하다.


삼각산은 풍수지리로 보아 수도 서울의 조산祖山이며 종산宗山으로 알려져 있다. 삼각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한북정맥의 끝 부분에 형성된 산으로서, 조선의 수도로 한양(서울)이 정해질 때, 북악을 주산主山으로하고 그 뒤로 연결된 삼각산을 조종祖宗으로 하여 도읍을 정한 것이다.

 

삼각산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성종 이후부터 1900년대까지 불려 졌으며, 삼국시대에는 부아악負兒岳으로, 조선시대 중기에는 화산華山, 화악華岳으로 불리기도했다. 오늘날 많이 부르고 있는 북한산이라는 명칭은 1711년(숙종 37)에 축성된 북한산성을 근거로 남한산성과 대비하여 서울 북쪽에 위치한 산이라는 의미로 1900년대 초부터 사용된 명칭이다. 삼각산은 백제의 건국과 함께 부아악이란 이름으로 기록에 나타난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하였다고 하며, 부아악은 이 삼각산을 의미한다.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아 국토를 순례할 때, 백운대로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 방향으로 가 비봉에 이르니 한 석비가 있었는데 거기에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는 비석이 있어서 길을 다시 바꾸어 내려가 궁성터(오늘의 경복궁)를 정하였던 곳이 바로 이 삼각산이다.


삼각산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쓴 시“우뚝 솟은 뫼는 하늘까지 솟았네. 한양의 지세는 하늘을 열어 이룩한 땅. 굳건한 큰 대륙은 삼각산을 떠 받쳤고”에 나타나고,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끌려가면서 남긴 김상헌의 시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에 등장하기도 하며, 많은 시인 묵객들의 시화에 등장하기도 하는 명산이다.

 


■ 청송 주왕산 주왕계곡 일원 ■


지정번호 명승 제11호
소 재 지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산24 외
지정면적 8,368,056㎡
지 정 일 2003년 10월 31일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에 위치하고 있는 주왕산周王山은 한반도 지형의 뼈대를 이루는 백두대간에서 동남부로 뻗어 나온 지맥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 721m의 주왕산 주위에는 600m가 넘는 산봉우리가 12개나 솟아 있으며, 수많은 암봉과 깊고 수려한 계곡이 서로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다.

 

‘청송 주왕산 주왕계곡 일원’은 주왕산 권역중에서 청송군 지역에 해당하는 구역을 대상으로 지정하였으며, 대전사 쪽의 진입부에서 주왕계곡을 중심으로 양측의 산 능선부위까지 지정구역으로 정하고 있다. 주왕산은 암벽으로 둘러싸인 산들이 마치 병풍과 같다고하여‘석병산石屛山’이라고도 하며, 표고가 아주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세가 대단히 웅장하고 사계절의 경관이 매우 수려한 산이다.


주왕산 일원의 지질은 풍화와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중생대 백악기 유천층군의 중성 내지 산성 화산암류로 되어 있다. 연꽃 모양을 한 연화봉과 만화봉, 주왕이 무기를 감추었다고 하는 무장굴(하식동), 신선이 놀았다고 하는 신선대와 선녀탕, 그리고 제1·제2·제3 폭포 등은 경승지로서의 가치가 뛰어나다. 주왕산은 심산구곡을 이루고 있어 동·식물도 매우 다양하게 분포한다. 포유동물 46종·조류 27종·곤충 603종이고 식물이 491종류이다. 특히 수달래(수단화水丹化)·망개나무·송이버섯·천연이끼 등은 주왕산의 특산물로 유명하다.


주왕산이란 이름은 신라시대에 주원왕이 임금의 자리를 버리고 수도하였다는 전설에서 호칭되었다고도 하고, 중국의 진나라에서 피신하여 온 주왕이 이곳에 웅거하였다고 해서 불러졌다고 한다. 산봉우리·암굴마다 주왕의 전설이 얽혀 있다. 신라시대 초기에는‘석병산’이라 하였으나 이와 같은 전설에 따라 신라 말기 이후에 주왕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청송지방에는 여러 산지에 산철쭉이 분포하고 있으나 주왕산의 것을 특별히 수달래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옛날 주왕이 이곳에서 신라 군사와 싸우다 힘이 다해 마장군 형제의 화살에 맞아 잡히자 그의 피가 주왕굴에서 냇물에 섞여 계곡을 따라 붉게 흘러 내렸는데, 그 이듬해부터 이 주왕산에는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꽃이 계곡과 내를 따라 피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꽃을 주왕의 피가 꽃이 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는 전설에 기인한다. 주왕산 기암절벽 가운데는 바위가 일부 떨어져 나간 곳이 있는데 여기에 얽힌 전설이 있다. 주왕이 신라의 마장군 형제와 일전을 벌일 때, 바위에 이엉을 둘러 쌀뜨물을 계곡에 흘려 보냄으로써 많은 곡식과 많은 군사가 있는것처럼 마장군을 속였고 그 때 마장군이 쏜 화살이 바위에 맞아 일부가 떨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 진안 마이산 ■


지정번호 명승 제12호
소 재 지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단양리 산127-1 외
지정면적 206,423㎡
지 정 일 2003년 10월 31일
마이산은 전북 진안군 진안읍 남쪽 약 3㎞ 지점에있는 두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산으로서, 동쪽 봉우리가 숫마이봉, 서쪽 봉우리가 암마이봉이다. 마이산馬耳山은 말의 귀를 닮은 산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진안읍 방향에서 남쪽 방향으로 서 있는 마이산을 바라보면 정말 말의 귀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마이산은 강이 발원하는 지점으로 유명한데, 남쪽 사면에서는 섬진강 수계가, 북쪽 사면으로는 금강 수계가 각각 발원한다.


마이산은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역암이 주 구성암석이며, 역(자갈)을 구성하고 있는 암석은 화강암이 가장 많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역암층은 주변의 다른 암석에 비해 풍화에 강하고, 융기작용·지질구조·차별침식 등으로 인하여 높은 지형을 이루고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에 발달한 단층대를 따라 활발한 침식작용이 일어난 결과로 판단된다.

 

산의 풍화 표면에는 수많은 풍화혈(Tafoni)이 다양한 크기로 발달되어 있어 학술적인 가치도 매우 크며, 이것은 빙정의 쐐기작용에 의하여 생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마이산 부근에는 진안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제386호)와 진안 마이산 줄사철나무 군락(천연기념물 제380호)과 같은 귀중한 식물자원이 인접하여 있다.

 

마이산에는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로 고갯길이 계단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남측 입구부분에는 80여 기의 돌탑이 세워져 있고, 이 탑과 함께 탑사가 건립되어있다. 이와 함께 은수사·금당사·북수사·이산묘 등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마이산 산봉과 유사한 역암으로 된 탑 모양, 또는 돔상의 지형은 마이산 동남쪽 약 2㎞ 지점까지 10여 개소가 분포하는데 광대봉·마두봉·관암봉·비룡대·나옹암 등이 줄지어 있다.


암마이봉(686.0m)과 숫마이봉(679.9m)으로 구성되어 있는 마이산은 말의 귀 모양을 하고 서 있어 명명된 것으로 알려진 산으로서, 신라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 고려시대에는 용출산聳出山, 조선시대부터는 마이산이라고 불렸다.

 

계절별로 마이산을 부르는 이름이 다른데, 봄에는 바다 위에 떠있는 돛대와 같다고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하늘 우뚝 솟은 것이 용의 뿔과 같다고 하여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말의 귀와 같다고 하여 ‘마이봉馬耳峰’, 겨울에는 먹물을 찍은 붓끝과 같다고 하여 ‘문필봉文筆峰’이라 불리기도 한다. 또한 오행五行의 금행金行을 묶은 듯 생겼다고 하여 ‘속금산束金山’이라고도 부른다.

 

동봉과 서봉사이의 협곡 같은 고개를 지나면 은수사銀水祠가 있다. 속금산이라는 명칭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무장으로 운봉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개선하는 길에 마이산을 보고 그 모습이 꿈 속에서 받은 금척을 묶어 놓은 듯 하다고 해서 속금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탑사 부근에는 백여 년 전에 이갑용이 신의 계시를 받고 쌓아올렸다는 80여 기의 돌탑이 남아 있으며, 이산묘에는 단군 선조와 조선 태조·세종·고종의 위패를 모신 회덕전이 있다.

 


■ 부안 채석강·적벽강 일원■



지정번호 명승 제13호 

소 재 지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301-1 외
지정면적 341,378㎡
지 정 일 2004년 11월 17일
부안 채석강·적벽강 일원은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반도 맨 서쪽, 격포항 오른쪽 닭이봉 밑에 채석강이 위치하고 있다. 채석강은 격포항에서 닭이봉 일대를 포함한 1.5㎞의 층암절벽과 바다를 말하며, 적벽강은 채석강 바로 옆에 있는 죽막마을을 경계로 해서, 해안절벽 일대를 의미한다.

 

채석강과 적벽강 지역의 경관이 아름다워 이 두 지역을 부안 채석강·적벽강 일원이라는 명칭으로 지정하였다. 부안 채석강·적벽강 일원은 변산반도에서 서해바다 쪽으로 가장 많이 돌출된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한 파랑의 영향으로 형성된 곳이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지층들로 구성된다. 높은 해식애 및 넓은 파식대, 겹겹이 쌓인 층리 등 해안지형의 자연미가 뛰어난 경승이다. 이러한 파식대·해식애·해안단구 및 화산암류·습곡 등의 이곳 지질 및 지형은 과거의 지질작용에 관한 기초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는 귀중한 자원이다.


채석강은 층리가 잘 발달된 퇴적층이 바닷물의 침식작용으로 노출되어 마치 수백 권의 책을 쌓아 올린것 같은 모습의 해식절벽을 이루고 있다. 채석강은 주변의 백사장, 맑은 물과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적벽강은 그 이름과 같이 붉은 색 암반과 절벽으로 해안이 형성되어 있어 특별한 경치를 이루고 있다.

 

죽막마을 해변은 다양한 암벽 및 상록활엽수의 식생이 형성되어 있고 천연기념물 제123호 부안 격포리 후박나무군락이 있는 등 식생환경이 우수한 곳이다. 부안 채석강·적벽강 일원은 특이한 해안 지질경관과 식생경관이 어우러진 해안절경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서, 수성당과 같은 문화경관적 요소와 과거 닭이봉에 설치되었던 봉화대와 같은 역사적 요소가 명승의 장소적 가치를 더욱 높여 주고 있다.


채석강은 중국의 당나라 시인 이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던 중에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졌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유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적벽강 또한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즐겨 놀았다는 중국의 적벽강과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후박나무 군락 앞 해안의 암반층에 형성된 석물상 가운데 어느것은 여인의 가슴 같고, 또 어느 것은 토끼 모양을 하고 있는 등 바위 하나하나가 만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돌아가면 높이가 30m 정도 되는 2개의 절벽으로 된 바위가 있는데, 그 안에 용굴이라 부르는 50㎡면적의 동굴이 있다. 용굴에서 북쪽으로 용두를 돌아가면 검붉은 암벽으로 덮여 있다. 이곳에는 검은색·갈색 등 형형색색의 수석이 깔려 있어 절경을 이룬다. 격포는 옛날에는 수운의 근거지가 된 곳이다. 이곳은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 관하의 격포진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 영월 어라연 일원 ■


지정번호 명승 제14호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거운리 산40 외
지정면적 1,677,824㎡
지 정 일 2004년 12월 7일
영월 어라연 일원은 영월읍을 남북으로 지나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동강의 문산 나루터와 거운 나루터 사이에 있다. 동강의 일부인 영월 어라연 지역은 하천지형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천혜의 지역으로서, 한반도의 지질학적 구조운동, 즉 융기의 증거인 감입곡류하천이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특이한 지형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어라연 일대의 역암층으로 이루어진 수직절벽은 강물의 침식에 의해 형성된 하식애이며, 오랫동안 지속된 침식과 풍화작용은 협곡의 어라연 계곡을 이루게 하였고, 상·중·하선암 지역의 구하도를 만들었으며 소·여울·급류 등의 특별한 지형을 형성시켰다. 어라연 계곡은 하천 및 암반이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주변 산야가 울창한 산림지대로 형성되어 기암절벽과 식생경관이 서로 천혜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명승이다.


어라연 지역의 식생은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하천 주변의 식생으로는 달뿌리풀이 대부분 차지하며 그 외 엉겅퀴·갈대·패랭이·쇠별꽃 등이 분포하고 있다. 하상의 식생으로는 강가 경계부에는 원추리·홑왕원추리·덩굴딸기가 대군락을 이루고 있고, 목본으로서 갯버들·키버들·왕버들·시무나무와 비술나무가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산림식생으로서는 소나무 군락이 높은 분포율을 나타내고 있으며 학술적 가치가 있는 식물군으로서 회양목 군락지 및 비술나무·시무나무 등이 있고 암벽식생으로서 돌단풍·부처손 등이 자라고 있다. 또한 어라연 계곡에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는 어종으로 어름치가 서식하고 있고, 어라연은 수달·황조롱이·원앙 등 천연기념물과 비오리 등 야생동물의 집단서식지로서 알려지고 있어 명승으로서의 가치가 더해지고 있다.


문화경관적 측면에서 어라연 지역에는 정선아리랑 등 2,000여 수의 토속민요가 전승되고 있으며, 신석기·청동기·철기 유적지뿐만 아니라 설화·민담·전설 등이 다수 분포하여 문화유적지로서의 가치가 매우 큰지역이다. 어라연은 물 반, 고기 반이라 할 정도로 고기가 많아 물고기의 비늘이 비단결처럼 반짝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초기에 어라연에는 큰 뱀이 바위위에 가끔 나타났다. 이 뱀은 길이가 수십 척이고 비늘이 동전만한 크기이며, 머리에는 두 귀가 있고 배에는 발이 네 개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소문이 퍼지자 조정에서는 권극화權克和를 보내어 알아보게 하였다. 권극화가 배를 타고 연못 가운데 이르자 폭풍이 일고 파도가 험악해 지더니 배를 삼켜 버렸으며, 잠시 후 바람이 잦고 뱀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어라연에는‘상선암’과‘하선암’이라고 하는 두 개의 바위섬이 있는데, 이 바위에는 신선이 기거했다는 전설이 있어 바위 이름이 이렇게 명명된 것이라고 한다. 어라연은 정선에서부터 내려오는 뗏목이 지나가는 여울로서, 정선아리랑 등 문화적 요소가 어우러져 문화경관적 장소성을 돋보이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 논 ■


지정번호 명승 제15호 

소 재 지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 777 외
지정면적 227,554㎡
지 정 일 2005년 1월 3일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 논은 경남 남해군의 서남단의 홍현리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다랑이 논은 선조들이 산간 지역의 급경사지에서 벼농사를 짓기 위해 산비탈을 깎아 만든 농경지이다.

 

다랑이 논은 농경시대 사람들의 전통적인 삶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형성된 경관이다. 가천마을 다랑이 논은 설흘산과 응봉산 아래 바다를 향한 산비탈 급경사지에 지형을 따라 곡선 형태로 100여 층의 논이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다랑이 논은 삿갓을 씌우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논배미가 작아‘삿갓배미’로 불리어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모습을 지닌 가천마을 다랑이 논의 배후에는 높은 산이 우뚝 솟아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전면으로는 넓게 트인 바다가 다랑이 논과 조화를 이루어 빼어난 농촌 문화경관을 형성하고 있어 경관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다랑이 논의 논두렁은 돌로 촘촘히 쌓여 있는데 여기에 공급된 돌들은 현재도 배후 산의 급사면에 풍부하게 퇴적되어 있다. 다랑이 논은 매우 규모가 작은 논으로서, 특히 경사가 심한 지형에 만들었기 때문에 폭이 좁게 이루어져 있는데, 한 뼘이라도 논을 넓히기 위해 석축을 가능한 수직으로 축조했다. 이렇게 조성된 석축은 매우 아름답고 독특한 형태의 농업경관을 만들었다.

 

남해 가천 마을 다랑이 논은 계곡을 중심으로 하나의 위요경관圍繞景觀을 형성하고 있는데, 가천마을은 이 위요경관의 아래 부분의 한가운데를 점하고 있고, 이 마을에는 가천암수바위가 위치하고 있다. 암수바위는 숫바위가 높이 5.8m, 둘레 2.5m이고, 암바위가 높이 3.9m, 둘레 2.3m의 선돌 형태를 지니고 있다.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 논은 농업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경관이다. 농업을 바탕으로 하는 농업경관은 농경행위의 지속에 의해서만 경관의 영속성이 유지될 수 있다. 가천마을 다랑이 논의 주요 경작물은 벼와 마늘이며, 1년에 이모작을 하고 있다. 현재도 경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비탈이 심한 지역 등 경작 여건이 어려운 곳은 휴경지로 남아 있다.

 

가천마을의 유래에 대한 자세한 자료는 없으나 대대로 마을에서 살아온 김해 김씨, 함안 조씨 집안에 전해오는 자료로 추측해 볼 때, 신라 신문왕(?~692) 때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을에 전해지는 미륵전설과 육조문에 대한 전설을 통해 보면 고려시대 이전에 삶이 시작되었고, 400여 년 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설흘산 봉수대는 이미 그 전에 이곳 가천마을에 주민이 집단적으로 거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전해오는 마을의 옛 이름은‘간천間川’이라 불리어 왔으나 조선 중엽에 이르러‘가천加川’이라고 고쳐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 내에는 가천암수바위(경남도 민속자료 제13호), 밥무덤 등이 있어 민간신앙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민들은 암수바위를 각각 숫미륵, 암미륵이라고도 부르는데, 과거에 부르던 원래의 명칭은‘미륵불’이었으나 최근 들어 암수바위로 불리고 있으며, 자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성기숭배의 대상물로 여겨지고 있어 이 바위에 기도를 올리면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예천 회룡포 ■


지정번호 명승 제16호 

소 재 지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950 외
 지정면적 790,864㎡
지 정 일 2005년 8월 23일
예천 회룡포는 용궁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용이 물을 휘감아 돌아가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내성천이 태극무늬 형태를 이루어 모래사장을 만들고 그 안에 마을이 들어서 있는곳이 회룡포이다. 내성천 및 낙동강 상류 일대에 수많은 감입곡류嵌入曲流지형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회룡포는 가장 전형적이며 아름다운 감입곡류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감입곡류란 하천의 물돌이 지형을 의미하며, 회룡포의 물돌이 지형은 S자형으로 흘러가는 감입곡류의 하천이 이러한 지형적 특성을 이루게 한 경관형성 요소이다. 회룡포의 물돌이 지형에는 맑고 푸른 강물, 은모래가 쌓인 백사장과 그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가파른 경사의 산악지형, 울창한 자연식생, 그리고 농경지와 마을이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하고 있다.

 

선캄브리아누대에 형성된 편암 혹은 편마암이 분포하는 지역에 하천이 발달하여 유로가 크게 회류하게 되고, 하천이 크게 회류함에 따라 형성되는 침식지형과퇴적지형이 근접·발달하여 감입곡류 지형의 특유한 하천경관을 형성한다. 하천의 공격사면 쪽에 발달한 아치형 산 능선은 이를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다양한 경관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또한 산 능선 부위가 감입곡류 지형을 바라보기에 알맞은 조망지점을 이루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가진 곳이 많지 않으며 그 규모 면에서도 회룡포를 능가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회룡포를 조망하기 가장 좋은 지점은 회룡대이며, 회룡대는 하천 침식에 의해 깎여진 비룡산의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회룡포에서는 하성단구·하성도·포인트바·범람원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침식 및 퇴적지형 연구의 기초 자료로서 학술적 가치가 크고, 교육적인 면에서도 활용가치가 크다.


회룡포는 원래‘의성포義城浦’라고 한다. 의성포라는 지명은 이곳의 하천이 성과 같이 쌓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이 마을에 사람이 처음으로 들어온 것이 약 150여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들은 1백리 밖 의성에서 건너와 정착하였기 때문에 의성포라 불렀다고도 한다.

 

대대로 경주 김씨 집안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성촌인 회룡포는 풍양면 청운3리 사막마을에서 살던 경주 김씨 조상들이 이주해 온 것이라고 하며, 현재 9가구 모두 경주 김씨다. 의성포라고 하면 의성에 있는 마을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예천군의 주도로‘회룡포’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내성천을 둘러싸고 있는 비룡산에는 신라시대 사찰인 장안사가 위치하고 있는데, 장안사는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선사가 세운 옛 사찰이지만 장안사의 절집들은 최근에 중수하여 옛 사찰의 모습은 느낄 수 없다.<계속>

 

국보를 보관하는 국보, 합천 해인사

 

해인사가 자리한 가야산국립공원(1,430m)은 경남 합천과 경북 성주에 걸쳐 있는 우리나라 12대 명산으로 예부터 해동의 십승지라 했다. 또한 사계절 풍광이 빼어나 조선 팔경 중 하나로 이름이 높았다.

 

해인사를 찾아가는 길. 우거진 나무 사이로 일주문이 보인다. 이 문을 지나면 거목 가로수를 따라 곧은길이 열린다. 하늘을 향해 경배하듯 높게 자란 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길섶에 해인사 창건을 기념해 식수한 나무로 전해지는 느티나무가 서 있다. 천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을 보내고 1945년에 고사목이 됐다. 사천왕 탱화가 그려진 봉황문을 지나면 계속해서 가파른 계단이 잇댄다. 계단의 끝은 해탈문이다. 불교에서 해탈은 속세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즉, 속세를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곳이 일주문이고, 종착지가 해탈문인 셈이다. 그 가운데 놓인 가파른 계단은 모두 33개. 쉬지 않고 오르면 숨이 차고 다리도 묵직하다. 그 모습 이 마치 해탈의 경지에 다다르려는 인간의 간절함을 보는 것 같다. 국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은 1236년 몽골 침략군을 격퇴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제작에 착수한 이후 16년 뒤인 1251년에 완성되었다. 이를 팔만대장경이라 부르는 이유는 경판의 수가 총 81,258장에 이르기 때문이다. 경판을 모두 쌓으면 총 높이가 3,250m로 백두산(2,744m)보다 약 506m 더 높다. 무게는 2.5톤 트럭 112대 분량이다.

 

국보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은 1488년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 중이던 것을 좀더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이곳으로 옮겨올 당시 지었다. 겉보기에는 매우 단순하고 평범한 건물 처럼 보인다. 심지어 해인사의 다른 전각에 비해 단청까지 없으니 뭇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하지만 단순함 속에 감춰진 선조들의 과학적 지식과 경험은 해인사 대장경판을 오랜 기간 효과적으로 보존하는데 그 가치가 입증 되었다.

 

장경판전의 우수성은 건물 배치와 창호 계획을 통해 나타난다. 모두 네 채의 건물로 이루어진 가운데 마당 앞쪽 에는 수다라장이 있고, 그 맞은편에 법보전이 있다. 그리고 좌우에 각각 동서 사간고가 있다. 각각의 건물은 서남향으로 지어졌다. 목조건축물은 습기에 취약하기 마련인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조량을 최우선에 둔 것이다. 장경 판전에는 여름에 12시간 정도 햇빛이 비치고, 일조량이 가장 적은 겨울에도 7시간 정도 햇빛을 받는다. 바람을 이용한 통풍과 공기 순환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장경판전에는 나무 창살이 설치된 크고 작은 창이 많다.

 

법보전과 수다 라전의 뒷벽 아래 창은 위 창보다 크기가 작은데 건물 뒤편 산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기 위해서이다. 반대로 앞 벽에 있는 아래 창은 작고 위 창은 크다. 전면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을 실내로 많이 끌어들이려는 계산이다. 습기를 막기 위한 바닥 시공도 남다르다. 바닥에는 숯을 깔고 그 위에 소금을 뿌렸으며 다시 그 위에 마사, 횟가루, 황토를 섞어 ‘강회다짐’을 했다. 숯은 습기를 제거하는데 탁월하고, 소금은 수분을 머금고 있다가 날씨가 건조할 때 수분을 배출한다.

 

게다가 마사, 횟가루, 황토는 해충을 막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자동 습도 조절 기능 덕분에 나무로 만든 해인사 대장경판이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경판꽂이의 공간 배치도 눈여겨볼 만하다. 우선 직사각형 건물의 길이와 방향이 일치하도록 설치해 공기의 흐름을 막지 않았으며, 목판이 서로 맞붙지 않게 손잡이 역할을 하는 테두리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또 한 번 습기를 막았다. 이로써 해인사 장경판전에는 이끼나 곰팡이, 곤충 등이 번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찰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양산 통도사

 

통도사를 찾아가는 길에서 산사의 길 특유의 감동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여유가 있다면 통도사 외곽 주차 장에서부터 천천히 걸어가는 편이 좋다. 1km 남짓한 조붓 한 길을 따라 소나무가 반갑게 마중을 나와 길의 운치를 더한다. 이 길은 ‘무풍한솔길’이라 부른다. 숲속 소나무는 얽매임 없이 이리저리 뒤틀리며 자랐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고 여유롭다. 걷는 것만으로도 깊은 수련을 한 듯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 길은 2018년 제18회 아름다운 숲 전국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산책길이다.

 

『삼국유사』 기록에 따르면 신라의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와 왕명에 따라 통도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때가 신라 선덕여왕 15년(646). 자그마치 1,300 년이 훨씬 지났다. 그래서일까. 전각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무게는 무겁고 엄숙하다. 통도사라는 이름의 유래 중 하나는 이 절이 자리한 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한 인도의 영취산과 닮았다 하여 그리 부른다는 설로 이 외에도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통도사는 규모가 상당히 큰 절이다. 따라서 관람 동선을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경내는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으로 나뉜다. 관람 순서는 대웅전과 금강계단 등이 있는 상로전부터 하는 게 좋으며 상로전 이후 계단 바로 아래 전각이 있는 곳이 중로전, 그 아래가 하로전이다.

 

통도사는 본당인 국보 대웅전에 불상이 없다. 이유는 대웅전 옆 국보 금강계단 위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불사리탑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연유로 통도사가 불보(佛寶) 사찰이 되었다. 참고할 것은 금강계단은 사리탑 보존을 위해 지정된 참배 일에만 출입할 수 있다. 중로전에는 보물 양산 통도사 대광명전이 있다. 이는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이 봉안되어 있다. 그 앞으로 미륵불이 있는 용화전, 관음보살이 있는 관음전이 이어진다. 하로전은 중로전에서 불이문을 지나 사천왕문에 이르는 구역이다. 보물 영산전과 보물 삼층석탑, 약사전, 극락보전 등이 있다.



자연의 법칙을 따른 영주 부석사

 

부석사가 자리한 곳은 백두대간의 너른 품 소백산국립공원 북동쪽 봉황산 자락이다. 기세 장대한 산세를 병풍 삼은 곳인 만큼 산의 형세에 맞춰 오름식으로 지어졌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한 사찰이다. 일주문을 지나서 부석사 가는 길엔 은행나무가 열병식을 하듯 자리를 지킨다. 가을날 추색에 물든 은행이 한껏 아름다움을 뽐낼 것이다. 나무 사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는 보물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는 신라시대의 석조 유물이다. 1,300여 년 전 화엄 종찰을 알리는 깃발이 휘날렸겠지만 지금은 기둥만 남았다.

 

짧은 진입로를 벗어나 가파른 천왕문을 지나자 부석사의 내밀한 곳에 발을 들인다. 자연과 조화된 전각들의 모습에 먼저 눈이 간다. 그리고 안양루 아래 기둥은 굵기도 제각각이고 뒤틀리고 굽은 모양도 자연 그대로이다. 안양루에서 국보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으로 향하는 계단은 비대칭으로 살짝 틀어져 있다. 1층 안양문을 지나자 파노라마처럼 넓게 펼쳐진 무량수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천 년 이상을 버텨 온 강직함 부터 균형과 절제가 정점을 찍듯 자아내는 우아한 자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국보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 손꼽힌다. 무량수전 옆에는 부석으로 불리는 큰 바위가 있다. 아래위가 떠 있다 하여 부석(浮石)이라 부르는데 절의 이름도 이에 따라 지은 것이다. 무량수전 오른쪽 삼층 석탑을 지나 비탈길을 따라서 오르면 국보 영주 부석사 조사당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진다. 시야가 트인 곳에서 정면을 응시하면 소백산이 아득하다. 산중에 자리한 산사의 고즈넉함이 소백산 연화봉까지 잇대는 듯하다.



글, 사진. 임운석(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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