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위 맹수 호랑이는 조선의 큰 걱정거리였다. 조선 중기의 문신 유몽인은 사람의 잔인하고 포악한 본성을 호랑이에 빗대 지은 「호정문(虎穽文)」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호환을 묘사했다. 아낙이 나물을 캐다가, 농부가 밭을 갈고 김을 매다가 호랑이를 만나는 일이 수시로 일어났고 호랑이가 한양 도성 안으로 출몰해 사람을 물어 죽이는 일도 빈번했다.
조선 조정은 호환을 막기 위해 일찍부터 많은 정책을 시행했는데 그중 하나가 착호갑사(捉虎甲士)와 착호인이었다. 착호갑사는 말 그대로 호랑이 잡는 특수부대로 착호갑사는 서울, 착호인은 지방에서 호환을 방비했다.
착호갑사는 활이나 창의 무예가 뛰어나거나 달리기나 힘이 좋은 사람을 취재(取才) 시험을 통해 선발했다. 목전·철전·기사·기창·달리기·들어올리기 등 무예가 있는 자를 선발했고 활이나 창으로 호랑이 2마리를 잡는 자는 시험을 면제하고 임명했다.
착호갑사는 160~170cm에 달하는 강력한 대전(大箭)을 쏠 수 있는 쇠뇌와 목궁을 사용했는데 호랑이를 추적해 먼저 대전을 쏘아 명중시켜 상처를 입힌 뒤, 다가가서 창으로 급소를 찌르는 방식으로 사냥했다. 임진왜란 이후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5군영이 생기면서 착호갑사의 기능을 대신했고, 16세기를 정점으로 사라져 갔다. 착호갑사는 나라의 안위를 지키고 백성을 돌본다는 사명감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용맹함과 사명감이야말로 착호갑사가목숨을 걸고 호랑이와 마주했던 이유였다.
무적핑크
서울대학교 디자인과 졸업. 2009년부터 2014년에 걸쳐 「실질객관동화」, 「실질객관영화」, 「경운기를 탄 왕자님」을 연재했다. 2014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린 「조선왕조실톡」이 큰 관심과 주목을 받아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며 톡 형식과 역사 장르의 대표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그 인기로 YLAB과 함께 웹툰업계 최초 레이블 ‘핑크잼’을 세워 저스툰에 「세계사톡」을, 네이버웹툰에 「삼국지톡」을 연재하며 톡 시리즈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평화와 전쟁, 사랑과 아픔이 공존하는 ‘서해의 보석’ 백령도
- 트래블조선
위 치 :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백령도는 우리 땅의 서쪽 끝이자 북쪽 끝이다. 중국 산둥반도와 190여 km, 북한의 황해도 장연군과는 10km 거리다. 백령도와 인천을 오가는 뱃길이 200km 남짓이니 서울보다 북한이나 중국과 가까운 셈이다. 그러다 보니 백령도는 예나 지금이나 군사적으로, 또 문화 교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백령도가 군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는 지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서해 북방 한계선을 따라 북쪽으로 불쑥 올라선 백령도는 보기에도 어색할 정도다. 이 같은 지리적 위치가 서해의 외딴섬 백령도를 한국전쟁 당시 군사적 요충지로 주목받게 만들었다. 특히 휴전을 앞둔 전쟁 막바지에는 수시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 중심에 동키부대(백호부대)가 있다. 동키부대의 전신은 장연군 무장대. 북한 지역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1·4 후퇴 이후 백령도로 숨어들었고, 미군에 의해 유격·첩보 부대로 재편됐다. 백령도와 대청도를 주둔지로 삼은 동키부대는 휴전될 때까지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전쟁의 판세를 뒤집은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한 것도, 서해 북방 한계선이 지금의 위치가 된 것도 그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백령면 진촌리 ‘진촌공공하수처리시설’ 옆에는 동키부대원들이 사용하던 작은 우물이 있는데, 그 맞은편 막사가 동키부대원들이 머무르던 곳이다. 북한의 장연군이 바라보이는 백령면 진촌면 마을 언덕에는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유격군 백호부대 전적비가 세워졌다.
용기포 구(舊) 선착장에서 이어지는 용기포 등대와 등대해변은 두무진과는 또 다른 멋을 자랑하는 기암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며, 고봉포구의 사자바위와 창촌포구의 용트림바위도 멋스럽다.
<당일 여행 코스>
동키부대 우물 및 막사→백령성당→사곶해변→중화동교회→두무진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등대해변(용기포등대)→사곶해변→콩돌해변→중화동교회→두무진 일몰→숙박
둘째 날 / 용기원산 전망대→동키부대 우물 및 막사→백령성당→심청각→사자바위
○ 관련 웹사이트 주소
- 옹진군청 관광문화 www.ongjin.go.kr/tour
-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 http://dom.icferry.or.kr, 032)880-3400
- 청해진해운 www.cmcline.co.kr, 032)889-7800
- 제이에이치페리 www.jhferry.com, 1644-4410
- 우리고속훼리(주) www.urief.co.kr, 032)887-2891
○ 문의 전화
- 옹진군청 관광문화과 032)899-2210
- 백령면 민원실 032)836-3000
- 심청각 032)899-3087
- 백령여행사(렌터카) 032)836-6662, 6699
- 백령투어(렌터카) 032)836-8118
- 해송여행사(렌터카) 032)836-7400
○ 대중교통 정보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하루 3회(08:00, 08:50, 13:00) 출항. 약 4시간 소요. 일부 여객선(하모니플라워호) 차량 탑재 가능.
- 데모크라시호 (08:00 인천 출발, 소청-대청도 경유, 13:00 백령도 출발), 청해진해운 (032)889-7800)
- 하모니플라워호 (08:50 인천 출발, 소청-대청도 경유, 14:00 백령도 출발), 제이에이치페리 (1644-4410)
- 씨호프호 (13:00 인천 출발, 소청-대청도 경유, 08:00 백령도 출발), 우리고속훼리(주) (032)887-2891)
○ 숙박 정보
- 아일랜드캐슬 : 백령면 백령로, 032)836-6700, www.islandcastle.kr (굿스테이)
- 백령리조텔 : 백령면 백령로280번길, 032)836-3233, www.brdo.co.kr
- 트윈스모텔 : 백령면 백령로264번길, 032)836-1100
- 그린파크 : 백령면 백령로297번길, 032)836-5551
○ 식당 정보
- 궁전식당 : 아귀찜, 백령면 백령로, 032)836-7721
- 부두식당 : 자연산 활어회, 백령면 백령로, 032)836-0008
- 사곶냉면 : 수육·냉면, 백령면 사곶로122번길, 032)836-0559
○ 주변 볼거리
천안함 위령비, 진촌리 감람암포획 현무암분포지, 어릿골해안, 연봉바위, 화동염전
※ 글·사진 제공=한국관광공사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숨어있는 세계사] 불가사의 건축물… 정교한 古代 공법 숨어있어요
세계의 거대한 돌 구조물
"조상 영혼 담겼다"는 모아이 석상
남태평양 외딴섬에 있는 '모아이'는 기형적으로 긴 귀에 긴 얼굴을 가진 석상으로 양손을 배 앞으로 모은 채 우뚝 서 있어요. 크기가 가장 작은 것은 3.56m, 가장 큰 것은 20.65m에 달해요. 석상이 있던 섬은 1722년 태평양을 항해하던 네덜란드 탐험가 야코프 로헤베인이 발견했어요. 그는 이곳을 발견한 날인 부활절(Easter)의 이름을 따 '이스터섬'이라 칭했어요.
발견 당시 모아이 석상은 얼굴과 상체 일부만 드러나 있었어요. 그런데 석상이 박혀 있는 땅 밑을 파 내려가니 약 9m 아래까지 박힌 나머지 돌의 부분까지도 조각돼 있었어요. 초기에 만들어진 모아이 석상이 사람과 비슷한 중소형의 크기인 것과 다르게, 후기 석상은 전체적으로 커져 있었고요. 후기 석상에는 붉은 암재로 만든 머리 돌도 얹혀 있었는데, 이는 현지인들이 '푸카오'(pukao)라고 부르는 붉은 모자를 형상화한 것이었어요.
석상의 몸체를 이루는 응회암은 섬 동쪽의 라노 라라쿠 화산이나 서쪽의 채석장에서 채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요. 800개가 넘는 석상을 조각하려면 적어도 5000명 이상의 노동력이 필요했다고 해요.
과거 사람들이 이 거대한 석상을 먼 거리까지 이동시킨 비결은 차츰 풀리고 있지만 이 석상을 왜 만들었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어요. 현재 이스터섬에 사는 원주민들은 석상에 조상의 영혼이 담겨 있다고 믿고 있는데요. 부족의 숭배 대상이었다는 설, 부족의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물이었다는 설 등 여러 주장이 있어요. 야자수가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섬이 발견 당시 황무지에 가까운 모습이었던 이유도 베일에 싸여 있답니다.
원형으로 세워진 거대한 돌기둥
영국 잉글랜드의 솔즈베리 평원에도 거대한 돌 건축물이 있습니다. 바로 '스톤헨지'예요. 스톤헨지는 기원전 2800년~기원전 1100년쯤까지 총 세 번의 시기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돌 30개를 둥그렇게 세워 만든 지름 98m의 바깥 원을 '셰일 서클', 안쪽에 탑 5개를 말굽형(U자 모양)으로 세운 원을 '블루스톤 서클'이라고 부릅니다.
이 중 말굽형으로 세워진 돌들은 각각 곧게 선 두 돌 위에 한 개의 돌을 얹은 모양으로 '삼석탑'이라고 불러요. 스톤헨지라는 명칭은 고대 영어로 '위에 올려놓은 돌'을 의미하는데, 삼석탑의 모양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스톤헨지에 세워진 돌은 최대 50t으로 내부 원형을 건축하는 데만 7년 정도 걸리고, 200만명의 노동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돼요. 돌의 일부는 이곳에서 북쪽으로 25㎞ 정도 떨어진 곳에서 옮겨진 것으로 확인됐지만, 많은 바위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웨일스의 프레슬리산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프레슬리산에서 스톤헨지까지 돌을 운반하려면 육지와 강을 지나 총 380㎞에 달하는 거리를 옮겨야 한다고 해요.
발견 초기 스톤헨지는 고대 켈트족이 종교 의식에 쓰려고 만든 것으로 여겨졌는데요. 이후 스톤헨지 입구와 블루스톤 서클이 향하는 방향이 하지·동지의 일출·일몰 방향과 일치한다는 이유로 "작물과 파종, 수확 시기를 알려주는 계절 시계"라는 설이 널리 퍼졌어요. 이 외 스톤헨지가 죽은 사람을 기억에 남기고 매장하는 묘지 역할을 했다는 설, 질병을 치료하려는 환자들의 순례지였다는 설 등도 제기됐지만 아직 정확한 용도는 밝혀지지 않았답니다.
700만t에 이르는 고대이집트왕의 무덤
이집트 피라미드는 기원전 2800년쯤부터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졌어요. 수천 개의 피라미드 중 기자 지구에 있는 피라미드 3개(쿠푸왕·카프레왕·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가 제일 유명해요.
이 중 가장 큰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폭 233m, 면적 5만586㎡, 높이 144m가 넘어요. 총 260만장의 벽돌이 사용됐고 전체 무게는 700만t에 이른다고 합니다. 피라미드의 북쪽은 세계 표준시의 기준이 되는 장소인 영국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의 '자오선(子午線·지구 경도의 원점) 건물'보다도 정확하게 북쪽을 가리킨대요.
고대이집트인들은 삶이 사후 세계를 준비하는 짧은 순간이라고 여겼어요. 그리고 자신들의 영혼이 이집트 제일 신인 오시리스의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믿었어요. 이곳에 들어가려면 육체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시신을 썩지 않게 미라로 만들어 보석과 함께 마지막 집(무덤)에 보관했어요.
이들은 몰려드는 야생동물과 도둑들에게서 시신과 보석을 지키려 무덤 위에 석탑을 쌓기 시작했고, 부자들은 경쟁적으로 높은 탑을 쌓으려고 했죠. 그래서 피라미드는 '이집트 왕족이 사후에 영원히 평화롭고 부유하게 지내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세워진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일반적이에요. 왕이 죽은 뒤 하늘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이라는 의미도 있어요.
그러나 정작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는 왕의 무덤이라고 할 만한 증거가 전혀 없대요. 왕들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고, 그들이 피라미드를 건설했다는 역사 기록도 없어요.
이 때문인지 '기자의 세 피라미드가 오리온벨트라고 불리는 별 3개와 동일한 배치 선상에 세워져 있다'는 점을 근거로 파라오가 여행할 하늘의 별자리를 지상에 구현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어요. 완벽히 동쪽을 향하고 있는 스핑크스의 몸체가 하늘의 문을 지키고 선 수문장 별자리인 사자자리를 향하고 있다는 점도 이 주장에 힘을 실어줬고요.
피라미드를 건축한 목적이 무엇이었든 고대이집트인들이 동서 방위를 완벽하게 계산하고 수준 높은 천문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답니다.
[고대의 거석문화]
인간이 특정한 목적을 갖고 거대한 돌로 구조물을 만들어 숭배하거나 무덤으로 이용하는 문화를 거석(巨石)문화라고 합니다. 거석문화 유적지는 세계 각지에 분포돼 있는데요. 볼리비아의 수도 수크레에 있는 고대 유적지 티아우아나코에는 높이 3m·폭 3.75m·무게 100t에 달하는 문 형태의 석조 건축물이 있습니다. 매년 9월 21일 새벽이면 여명의 빛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문의 중앙을 비춘다고 해서 '태양의 문'이라고 불려요. 프랑스 브르타뉴반도의 드넓은 평원에는 기원전 5000년쯤 세워진 2900개의 돌 무리가 늘어서 있는데, 돌이 향하는 방향이 하지 때 태양이 뜨는 방향과 일치한답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2/03/29/2022032902788.html
[동물 이야기] 울음소리만 1000여 가지… 베토벤·헨델도 홀렸죠
나이팅게일
나이팅게일<사진>은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새예요. 몸길이 16㎝ 정도에 붉은색 꼬리, 아담한 갈색 몸집을 가지고 있어요. 아프리카에서 추운 겨울을 난 뒤 따뜻한 봄이 되면 유럽으로 가서 짝을 짓고 새끼를 낳아요.
나이팅게일은 아름다운 울음소리로 유명해요. 휘파람 불 듯 "휘이" 소리를 내기도 하고 "쪼로롱" 지저귀거나 "짹짹" 울기도 하죠. 이렇게 무려 1000여 가지 다른 소리를 낸대요. 아름답게 지저귀는 것으로 유명한 종달새(340여 가지)나 찌르레기(100여 가지)보다 훨씬 많죠. 과학자들은 나이팅게일의 뇌에 다양한 울음소리를 만드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고 봐요.
이 새는 낮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이 잠자리에 든 밤에도 쉬지 않고 울어대는 것으로 유명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밤꾀꼬리'라고도 부르죠. 밤에 울어대는 나이팅게일은 주로 짝을 찾지 못한 외로운 수컷이래요. 암컷을 향해 "어서 빨리 나랑 짝을 짓자"고 애타게 노래하는 거죠. 특히 밤에 지저귈 때에는 낮보다 시끄럽대요. 밤에 우는 풀벌레 소리에 자기 울음소리가 묻히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해요.
나이팅게일은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습성이 강해요. 그래서 열심히 지저귀는 건 다른 새들에게 "이곳은 내 구역이니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 의미이기도 하대요. 보통 울음소리가 활발한 새들의 암컷은 잘 울지 않는 편인데, 나이팅게일 암컷은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지저귀죠.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맑고 영롱한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를 이야기나 음악 소재로 종종 사용했어요. 베토벤 교향곡 6번(전원)에는 나이팅게일의 지저귐을 표현한 플루트 연주가 나와요. 헨델은 '뻐꾸기와 나이팅게일'이라는 오르간 협주곡을 작곡했죠.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가냘픈 몸집으로 힘차게 지저귀는 나이팅게일을 예부터 봄의 전령, 희망의 상징으로 여겨왔대요.
나이팅게일은 한 배에서 알을 다섯 개 정도 낳아요. 둥지를 틀고 알을 품는 일은 암컷이 도맡아요. 풀이 무성한 숲이나 덤불 속에서 살며 땅 위에서 개미·딱정벌레 같은 곤충을 잡아먹죠.
우리나라에서는 나이팅게일을 볼 수 없지만, 나이팅게일과 가까운 친척뻘 새들이 있어요. 울새·꼬까울새·쇠유리새 등이죠. 이 새들은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우리나라에 들렀다 가는 철새인데, 이런 새들을 '나그네새'라고 한답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2/03/29/2022032902795.html
[숲과 사찰-세계가 인정한 한국의 산사] 한국의 산사는 어떻게 인류의 유산이 됐나?
- 글 이재진 편집장
- 사진 제공 법주사
법주사 등 7곳 2018년 등재… 역사·문화적 가치 등 보편성 지녀
문화재에는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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