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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중계]'강릉 단오제'의 하이라이트, 세계 최초의 팬터마임극(무언극)'강릉관노가면극'을 동영상으로 보시지요.

문화재방송 2022. 6. 6. 00:04

기획. 취재. 촬영. 편집:헤리티지 / 내레이션:한송이

하후상박, 그 시절의 트렌드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 틀어 올린 풍성한 얹은머리와 계란형의 갸름한 얼굴, 반듯하고 환한 이마, 초승달 같은 눈썹에 쌍꺼풀이 없는 새초롬한 눈매와 육쪽마늘 같은 예쁘장한 코 그리고 앵두를 닮은 살짝 다문 입술은 여인의 미모가 얼마나 완벽한지를 알려준다. 혜원이 그린 이 여인은 과연 누구일까? 정확한 정보가 알려진 것은 없지만 신윤복의 〈미인도〉를 연구한 학자 대부분은 그녀의 신분이 기생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저고리 천이 자주색으로 깃과 고름, 곁마기의 색을 달리하고 옥색의 소매 끝동을 달아 멋을 부렸다. 그런데 얼핏 보아도 불편할 정도로 상체에 꽉 끼고 기장은 매우 짧다.

 

이와는 달리 푸른색의 치마는 속옷을 여러 겹 겹쳐 입어 매우 풍성하게 부풀어 있다. 실용적이기보다는 멋 내기용 복장인 것이다. 이런 차림새는 ‘하후상박(下厚上薄, 치마는 풍성하고 저고리는 꽉 조이게 입는다)’이라 하여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했던 패션 경향이다. 당시에도 여인들의 옷차림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는 여인들의 복식에 대해 아래와 같은 비판적인 글을 남겼다.

 

옷깃을 좁게 깎은 적삼이나 폭을 팽팽하게 붙인 치마는 의복이 요사스럽다. (···)
새로 생긴 옷을 시험 삼아 입어 보았더니, 소매에 팔을 꿰기가 몹시 어려웠고, 한 번 팔을 구부리면 솔기가 터졌으며, 심한 경우에는 간신히 입고 나서 조금 있으면 팔에 혈기가 통하지 않아 살이 부풀어 벗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소매를 째고 벗기까지 하였으니, 어찌 그리도 요망스러운 옷일까! 대저 복장에 있어서 유행이라고 부르는 것은 모두 창기(娼妓)들의 아양 떠는 자태에서 생긴 것인데 세속 남자들은 그 자태에 매혹되어 그 요사스러움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의 처첩에 권하여 그것을 본받게 함으로써 서로 전하여 익히게 한다.
아, 시례(詩禮)가 닦이지 않아 규중 부인이 기생의 복장을 하도다! (···)
- 이덕무, 「사소절」, 『청장관전서』

 

이 글의 내용을 보면 기녀들의 패션 스타일이 여염집 규수는 물론이고 사대부가의 여성 사이에서도 크게 유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회 현상은 이전 시대에는 보기 어려운 문화의 역전 현상이다. 위에서 아래, 즉 사대부가의 규방에서 천민인 기녀들의 공간으로 전달되던 여성문화가 이제는 아래에서 위로 전해지게 되었고, 그 중심에는 장안에서 이름을 날리던 기생들이 있었다. 그들이 조선의 유행을 주도하는 패션 리더이자 ‘셀럽’의 위치에 오른 것이다.

 

사회 변화를 읽어내고 해석하는 패셔니스트들

신윤복이 그린 풍속화에는 조선의 여성 패션계를 이끌던 기생 외에도 유행을 선도하던 조선 남성들의 다양한 패션도 잘 묘사되어 있다. 그의 그림에는 사대부 양반부터 하급관리까지 다양한 신분의 남성들이 등장하는데, 그중 최고의 멋쟁이는 별감이다. 별감은 궁궐 내에서 왕과 왕족 가까이 있으면서 잡무를 담당하던 하급 관직이다. 이들은 최고권력자 주변에서 일하는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 양반 못지않은 권세를 누렸으며, 사치를 부리고 조선 후기 한양의 유흥문화를 주도했다.

 

별감이 애용했던 패션 아이템은 혜원의 그림 속에 잘 묘사되어 있다. 《혜원전신첩》에 실린 〈야금모행(夜禁冒行)〉, 〈기방난투(妓房亂鬪)〉, 〈주사거배(酒肆擧盃)〉에는 붉은색 겉옷을 입고 노란색 초립을 쓴 인물이 나오는데 그가 바로 별감이다. 별감은 붉은색 겉옷 안에 푸른색 비단옷과 주황빛 배자를 겹쳐 입었는데, 대담한 보색 대비의 패션도 무난히 소화하고 있다. 특히 붉은색 홍포(紅袍)는 별감만이 입을 수 있었던 옷으로 화려하고 당당한 모습 덕에 어디에 있든지 그들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별감은 소위 ‘기부(妓夫)’가 되어 기생의 뒷배를 봐주고 기생집을 관리, 운영하던 실세였으며 조선 후기 한양 유흥가의 주역이었다.

 

시대를 뛰어넘어 꾸준히 사랑받는 명작에는 당대를 관통했던 사회의 변화를 읽어내고 해석하는 작가만의 독창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 혜원 신윤복은 조선시대 어느 화가보다 색과 선을 사용하는 데 탁월했다. 그가 선택한 선명한 천연색과 속도감 강한 날렵한 선묘(線描) 덕에 자칫하면 조잡하고 유치하게 표현될 수도 있는 다양한 욕망의 민낯도 해학과 풍자라는 묘수로 포장되어 세련미가 넘치게 되었다. 한양 멋쟁이의 삶과 욕망을 상징과 기호로 담아낸 혜원이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조선 뒷골목의 생생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글, 자료. 백남주(미술사학자, 독립큐레이터)

 

자연과 인공, 동서 문화가 조화 이룬 창덕궁

 

창덕궁은 지형지물에 맞게 지은 독특한 특징이 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를 이뤄 조선시대 5대 궁궐 가운데 정수로 꼽힌다. 1997년 12월 3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제21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수원 화성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창덕궁은 왕의 공적 공간인 외전과 왕과 왕가의 사적 공간인 내전, 궁궐의 정원인 후원으로 나뉜다. 보물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이다. 현존하는 궁궐의 대문 가운데 가장 오래 됐으며 유일하게 정면이 5칸이다. 돈화문을 지나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화나무를 마주한다. 300~40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선의 번영과 위기의 순간을 함께한 셈이다. 활짝 열린 보물 인정문 사이로 인정전이 위엄을 뽐낸다. 인정전은 왕의 즉위식이나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등 공식 국가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겉은 2층이지만, 실내는 하나로 트여 단층이다. 실내에는 서양식 가구와 마루, 커튼, 샹들리에가 설치돼 있다. 조선 제27대 왕 순종대에 이르러 근대화의 급물살이 밀려온 결과이다.

 

보물 선정전은 임금의 집무실인 편전이다. 인정전과 같은 선상이 아닌 옆으로 비켜있다. 지형 여건상 인정전 뒤에 건물을 짓기에 부적절해 위치를 변경한 것이다. 선정전 동쪽에 내전인 희정당이 있고, 그 너머에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이 있다. 대조전 대청은 서양식 거실로 꾸며져 있다. 게다가 침실에는 침대까지 있다. 동서양의 조화가 생경하다. 왕가에서 만나는 이 같은 낯섦은 안타까움으로 이어진다. 굴곡진 역사를 아는 까닭이다. 그 흔적은 보물 낙선재에도 남아 있다. 낙선재는 원래 창경궁에 속했으나 고종 13년(1876)에 경복궁에 큰불이 난 뒤 편전으로 이용했다. 왕가의 권위나 위엄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 고종은 열강의 사신들과 마주했다.

 

창덕궁의 숨은 보석 후원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왕가의 휴식처이다. 후원은 자연 지형에 인공미를 더하였으나 훼손하지 않고 조화를 추구했다. 부용지를 중심으로 주변에 왕과 왕실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독서를 했던 부용정, 왕실의 도서를 보관하는 규장각 주합루, 과거시험을 보던 영화 당이 있다. 북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연꽃을 특히 좋아했던 숙종 때 지은 애련지에 닿는다. 그 너머에는 사대부 가옥을 본떠 지은 보물 연경당이 있다. 120칸의 저택이지만 궁궐에 비하면 소박하다. 완만한 비탈을 내려서면 다양한 정자가 한곳에 모여 있다. 임금은 옥류천 청의정에서 농사를 직접 체험하고 백성들의 삶을 몸소 느꼈다고 한다.


 

난공불락의 남한산성, 한양을 방어하다

 

예로부터 경기도에는 수도 서울을 방어하는 4곳의 요새가 있었다. 사적 남한산성도 그중 하나로 동남쪽 요새이다. 서울 도심에서 24km 떨어진 곳이다. 성이 있는 광주시는 약 80%가 산지로서 산골짝을 적신 물은 한강으로 흘러든다. 남한산성은 삼국시대 한반도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 이었다. 백제 시조 온조대왕의 사당인 숭렬전이 이곳에 조성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한산주에 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를 남한산성 이라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곳도 이곳이다. 산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한 이는 조선 제16대 왕 인조이다.

 

그 당시 227칸의 행궁과 함께 옹성 3개와 대문 4개, 암문 16개를 짓고 우물 80개를 팠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큰 성문 밖에 원형이나 방형을 쌓은 작은 성이고, 암문은 성곽에 문루를 일부러 세우지 않고 뚫은 문이다. 즉, 적군이 쉽게 발견하지 못하도록 만든 비밀통로인 셈이다. 행궁은 임금이 궁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별궁으로 전란 발생 시에는 피란처로 사용됐다. 남한산성의 용도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구한말에는 외세에 항거하던 의병의 기지로 사용됐다. 이러한 이유로 일제는 성안에 무기고와 화약고가 있다며 많은 시설들을 무참히 파괴했다.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국난이 있을 때마다 항쟁의 거점이 었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우리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크나 큰 치욕의 현장이기도 하다.

 

1636년 병자년 12월 2일 청 태종이 이끈 20만 군사가 파죽 지세로 조선 곳곳을 짓밟는 병자호란이 발발했다. 열이틀 후인 14일, 인조는 한양의 도성을 버리고 남한산성에 몸을 숨겼다. 47일간의 항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청군의 포위로 산중에 고립된 인조와 군사들에게 추위와 굶주림, 무엇보다 고립이라는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엄습했다. 이듬해 1월, 임금은 치욕의 ‘하성(下城)’을 결심하고 삼전도에서 항복했다. 삼전도의 굴욕 이후 많은 신하와 왕자가 인질로 잡혀갔고, 청 태종은 자신의 공덕을 자랑하는 ‘삼전도 비’를 세웠다.


 

‘왕가의 길’을 압축한 ‘국왕의 길’

 

남한산성은 수도권에 있어 주말이면 수많은 사람이 찾는다. 남한산성 트레킹 코스는 1코스 장수의 길, 2코스 국왕의 길, 3코스 승병의 길, 4코스 융성의 길, 5코스 산성의 길로 나뉜다. 그 가운데 2코스 국왕의 길은 조선시대 국왕의 공간이 었던 행궁에서 출발해 침괘정을 지나, 병자호란 시기 인조가 항복하러 성문을 나간 서문을 아우른다. 총거리 2.9km 이며 1시간 정도 걸린다. 사적 남한산성 행궁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훼손했던 것을 1999년 발굴 조사를 시작하여 2011년 한남루 복원을 끝으로 중건한 것이다. 행궁의 정문에 해당하는 한남루는 ‘한 강 남쪽 성진(城鎭)의 누대’라는 뜻이다. 한남루를 지나면 외삼문, 외행전, 내행전이 궁궐 건축 양식에 따라 일직선상에 자리한다. 좌전과 우실에 각각 종묘사직을 옮길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춘 것이 남한산성 행궁의 특징이다.


 

행궁이 있는 산성리는 조선시대 한강 이남에서 가장 번성 했던 지역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근대로 접어들면서 남한산 성이 행정·군사도시로서의 위상을 잃자 산성 인근에 거주 하던 주민들이 음식 장사를 시작했다. 이후부터 산성사거리 주변에는 닭백숙, 산채비빔밥, 도토리묵 등을 파는 식당 이 줄을 잇게 되었다. 즐비한 식당가를 지나 숲에 발을 들이면 한결 고즈넉하다. 이후 비탈을 오르면 백제의 시조 온조 왕과 산성 축성 당시 책임자였던 이서 장군을 모신 숭렬전에 이른다. 그리고 발걸음을 재촉하면 서장대로 불리는 수 어장대에 도착한다. 장대란 지휘관이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은 대(臺)를 일컫는다. 인조 2년(1624) 남한산성 수축 당시엔 4개의 장대가 설치됐다.

 

그러나 현재 남은것은 이게 유일하다. 47일의 항쟁 중에 인조는 여기서 직접 군사를 지휘했다고 한다. 그 당시엔 단층이었지만 영조 27년 (1751)에 2층으로 증축했다. ‘수어장대’라고 쓴 편액이 걸린 것도 그때였다. 국왕의 길은 우익문(서문)으로 이어진다. 성문 주변은 가파른 산세와 굳건한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난공불락의 요새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인조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1637년 스스로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 추위와 배고픔, 심장을 옥죄는 고립감과 공포심은 항전 의지마저 얼어붙게 했을 것이다.


 

마지막 북문을 향하는 길목에 연주봉 옹성이 있다. 옹성은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하고, 요충지에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다른 성에서는 찾아 보기 어렵다. 옹성 앞에는 포대가 있어 적이 성으로 접근하는 것을 미리 막아준다. 드디어 마지막 지점인 전승문(북문)에 이른다. 문의 이름은 정조 3년(1779) 성곽 개보수 때 명명한 것이다. 전승(全勝)이란 다시는 병자호란과 같은 치욕을 당하지 말자는 뜻이 아닐까. 왕가가 걸었던 길은 찬란한 번영의 길만 있는 게 아니다. 때론 치욕과 불명예의 길도 있다. 이것이 역사가 우리 에게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문화재청은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많은 사람들이 문화유산을 방문할 수 있도록 홍보한다.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은 우리의 대표 문화유산을 지역과 특색에 따라 묶어낸 10가지의 길(문화유산 방문코스)로 안내한다.


글, 사진. 임운석(여행작가)


#1 봉녕사 석조삼존불(奉寧寺 石造三尊佛)

 

봉녕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높이 중앙 1.45m, 우측 1.33m, 좌측 1.37m. 편평한 느낌을 주는 볼륨감 없는 신체, 토속성 짙은 얼굴 모습, 옷 주름의 도식화 경향 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소재지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36-54, 봉령사
문의 : 수원시 문화예술과 031-228-2413

 

#2 광명 이원익 초상화(光明 李元翼 肖像畵)

 

영정의 얼굴은 이원익의 공신도상과 자세 및 이목구비의 형태가 정확히 일치하고 있어, 이원익의 호성공신도상을 모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영정의 뒤편에는 화기가 붙어 있다. 이 중 ‘초(草)’라고 한 것은 호성공신도상을 제작한 1604년 당시의 공신도상으로 그린 원본이 아니라 원본에 앞서서 그린 것이거나 별도로 그린 ‘초본(草本)’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소재지 : 경기도 광명시 오리로347번길 5-6, 충현박물관
문의 : 광명시 문화체육과 02-2680-6142


 

#3 안양중초사지삼층석탑(安養中初寺址三層石塔)

 

안양시 석수동 삼성천을 끼고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중초사지에 남아 있다. 이 탑은 원래 당간지주에서 동북쪽으로 약 60m 떨어진 지점의 사찰 중심 공간으로 추정되는 곳에 넘어져 있었는데, 1960년 공장이 들어서 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일부가 파손·결실되었지만, 나머지 부재는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소재지 : 경기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103번길 4
문의 : 안양시 문화관광과 031-8045-2474

 

#4 팽성읍객사(彭城邑客舍)

 

조선 성종 19년(1488)에 크게 지었으며, 그 후로 2번의 수리를 거쳤다. 일제강점기에는 양조장으로 바뀌었다가 주택으로 사용되었는데, 1994년 해체·수리하면서 옛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현재는 대문간채와 본채가 남아 있다.

소재지 : 경기 평택시 팽성읍 동서촌로 101-3
문의 : 평택시 문화예술과 031-8024-3249

 

#5 이천어석리석불입상(利川於石里石佛立像)

 

이천 어석 2리 마을 한가운데 주택 사이에 위치한 높이 약 5m의 석불상이다. 고려 전기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유행한 커다란 석조 불상의 특징이 보인다. 백발의 머리에 폭 120cm의 팔각형 보개(寶蓋)를 쓰고 있고 이마에는 백호공(白毫孔)이 확연하게 보인다.

소재지 :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어석로72번길 33-4
문의 : 이천시 문화관광과 031-645-3655


 

#6 남한산성 수어장대(南漢山城 守禦將臺)

 

인조 2년(1624)에 남한산성(南漢山城)을 쌓을 때 지은 장대(將臺, 전쟁이나 군사훈련 때 지휘관이 군사들을 지휘하기 위해 만든 장소)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남한산성 안에서 제일 높은 청량산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어서 남한산성 내부와 인근 주변까지 모두 바라볼 수 있다. ※ 2021년 12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었다.

소재지 :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815-1
문의 : 광주시 문화관광과 031-760-4822

 

#7 기솔리석불입상(基率里石佛立像)

 

쌍미륵사 경내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이다. 요사채 뒤편에 쌓은 석축 위에 약 10m의 간격을 두고 남쪽을 향해 동서로 세워져 있다. 전체적으로 세부를 정교하게 조각하지 않고, 신체에 비해 큰 머리에 갓을 쓰는 등 고려 전기 불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특히 불상의 갓은 통일신라에는 없던 것으로, 충청도와 경기 남부의 불상에서 주로 나타나는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이다.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텃골길 105
문의 : 안성시 문화관광과 031-678-2504

 

#8 궐리사성적도(闕里祠聖蹟圖)

 

궐리사는 공자(孔子)를 모시는 사당으로 ‘궐리’는 중국 산둥성 취푸(曲阜)에 있는 공자가 태어나서 살던 궐리촌을 본떠 지은 이름이다. 성적도는 공자의 행적을 그림으로 그린 뒤 해설을 붙인 도설을 말한다. 이 성적도는 고종 8년(1904)에 조병식(趙秉式)등이 중국 산둥성에서 구한 성적도를 가져와 목판에 다시 새긴 것이다.

소재지 : 경기도 오산시 매홀로 3, 궐리사
문의 : 오산시 문화체육관광과 031-8036-7603


 

#9 명성황후생가(明成皇后生家)

 

고종의 황후로 개화기 국정에 참여했으나 을미사변(乙未事變, 1895)으로 시해된 명성황후가 태어나서 8세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본래 숙종 (1661~1720)의 비였던 인현왕후(仁顯王后)의 부친이자 명성황후의 6대 조부인 민유중(閔維重)의 묘지기용 작은집으로 숙종 13년(1687)에 처음 지어지고, 그 당시 건물로는 안채만이 지금까지 남아 보존되고 있다.

소재지 : 경기도 여주시 명성로 71
문의 : 여주시 문화관광과 031-887-3563

 

#10 청계사소장목판(淸溪寺所藏木板)

 

청계사에 있는 18종 466판의 목판. 광해군 14년(1622)에 새긴 묘법연화경을 비롯하여 인조 원년(1623)에 새긴 선요·도서·절요·서장 등 불교 교과목과 『예수십왕생칠경』, 『오대진언』,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 등의 불교의식에 관한 문헌이다. 그외에도 순조 31년(1831)에 새긴 『천지팔양신주경판』과 『몽산법어』, 『천자문』, 『계초심학인문·발심수행장』이 있다. 모두 청계사에서 새긴 목판이다.

소재지 : 경기도 의왕시 청계로 475, 청계사
문의 : 의왕시 문화체육과 031-345-2534




정리. 편집실 자료, 사진. 문화재청

 

 한국관광공사와 협업해 현장인증 이벤트 ㆍ문화유산 유유자적 누리집 개편 등 

문화재청(청장 최응천)과 (사)한국문화유산활용단체연합회(회장 김선의)는 이달부터 2022년 지역문화유산 활용사업을 더욱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홍보를 실시한다. 문화재청이 매년 지자체 공모를 통해 선정·지원하는 지역문화유산 활용사업은 지난 2008년부터 문화유산에 내재된 의미와 가치를 지역 자원과 결합하여 다양한 계층에게 참여ㆍ향유 기회를 제공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지역활성화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올해에는 생생(生生)문화재 활용사업을 필두로, 문화재 야행(夜行)과 향교ㆍ서원, 전통산사, 고택ㆍ종갓집을 활용한 각종 공연, 전시, 체험 활동을 대상으로 전국에서 총 406건의 사업을 시행한다. 적극행정을 위한 협업기관과의 통합홍보를 위해 ▲ 한국관광공사와 협업하는 대국민 온라인 행사, ▲ 지역문화유산 활용사업 공식 누리집인「문화유산 유유자적」누리집(cha.go.kr/eventInfo/index.do)의 개편, ▲ 재한외국인 유학생 홍보 여행(팸투어) 등을 개최할 계획이다.

 

  먼저, 6월 2일부터 30일까지 한국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신상용)와 협업하여「대한민국 구석구석」누리집(korean.visitkorea.or.kr)에 제1차 대국민 온라인 행사를 시행한다. ‘문화재야행! 가야행! 찍어야행!’ 행사는 6월에 개최되는 문화재 야행 중 통영, 제주, 전주, 아산과 인근의 다른 지역문화유산 활용 현장을 방문한 인증사진을 촬영하여「문화유산 유유자적」인스타그램(instagram.com/uujj_cha)에 올리면, 총 13명을 선정하여 여행상품권 등 소정의 경품을 제공하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올해 새롭게 개편된 지역문화유산 활용사업 공식 누리집인「문화유산 유유자적」누리집(cha.go.kr/eventInfo/index.do)에 406건 지역문화유산 활용사업의 시기,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며, 게시판에서는 지난 지역문화유산 활용사업 홍보책자(PDF)를 내려 받을 수 있다. 문화유산 유유자적 인스타그램(instagram.com/uujj_cha)과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uu_cha)에도 지역문화유산 활용사업의 생생한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6월 9일에는 재한외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울과 경기 지역의 지역문화유산 활용사업 현장을 방문하는 소규모 홍보여행(팸투어)를 개최할 예정이다. 보다 확대된 재한외국인 유학생 홍보여행은 오는 10월에 개최될 계획이며, 세부내용은 추후 공지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되면서 문화유산 향유 기회가 확대되는 만큼,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는 각 지역의 문화유산 현장에서의 활용 프로그램에도 국민의 많은 관심과 방문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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