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편집:헤리티지
`승무'는 불교의 승려가 갖는 세속적고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춤이라고
합니다.
이 시에서 승무를 추는 사람은 `복사꽃
고운 뺨'을 지닌 젊은 여인으로 속세를
떠나 승려가 된 한스러운 사연이 있음 직하다,
여기서 춤은 단순한 춤이 아니라 세속의
번뇌를 접고자 하는 수도자의 종교적
염원을 담고 있다 합니다.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도난당한 안평대군·안중근 유물…돌아오지 않는 국보 보물들
지난주에는 우체국 국제특송과 공항검색대 등을 이용해서 해외로 문화재 밀반출을 시도하던 피의자들이 적발됐습니다. 덕분에 문화재 4종 92점을 찾아냈는데요. 울산에서는 보덕사에서 도난된 불상 한 구를 회수했습니다. 결국 지난 한 주에 문화재 관련 회수사건이 두 건이나 있었네요.
이번 주엔 이 도난문화재의 회수 건을 계기로 지금까지 감쪽같이 사라져 돌아오지 않는 국보와 보물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도난당해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한 국보·보물들. ①2001년 소장자가 집을 비운 사이 사라진 국보 238호 ‘소원화개첩’. 조선의 명필 안평대군(1418~1453)의 진필이다. ②안중근 의사(1879~1910)가 1910년 3월 뤼순 감독에서 쓴 유묵(보물 569-4호). ‘허름한 옷과 거친 음식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은 함께 도를 논할 수 없다(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는 글씨이다. 다른 곳도 아닌 청와대에서 사라졌다. ③전남 순천 ‘송광사 16조사 진영’(보물 1043호). 보조국사 지눌(1158~1210) 등 고려 후기에 활약한 고승 16명의 초상화이다. 1995년 1월 16국사 영정 중 13점이 사라졌다. ④조선 중기의 문신 유근(1549~1627)의 영정(보물 제 566호). 1999년 도난된지 21년이 지났지만 오리무중이다. 문화재청 제공
■진품명품의 명암
1995년 시작되어 지금까지 방영되는 장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KBS의 ‘TV쇼 진품명품’입니다.
문화재의 가치를 대중에게 쉽게 알려주기 위해 재미삼아 감정가를 붙인, 이름 그대로 ‘문화재 쇼’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1996년 방영된 45회에서 아주 흥미로운 숫자가 전광판에 찍혔습니다.
중종반정(1506년)에 참여한 공신 류순정(1459~1512)의 영정의 감정가를 표시하는 전광판에 ‘9999만 9999원’이 찍혔지 뭡니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했더니 전광판 숫자를 1억원, 즉 9자리 이상 만들어놓지 않아서 불가피하게 9999만9999원으로 표시했다는 겁니다. 감정가 1억원 이상 되는 의뢰품이 나올 줄 예상하지 못했다는 거죠.
그러나 이 최고액은 불과 2년 만에 깨집니다. 1998년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김재로(1682~1759)의 영정으로 알려진 초상화에 2억5000만원의 감정가를 매겼습니다.
①남원 실상사 백장암 석등(보물 40호). 석등의 머리장식인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도난당했다. ②977년(고려 경종 2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원종대사혜진탑’(보물 7호). 탑의 윗부분 보륜과 보주가 사라졌다.③인천 강화 백련사 관음전에 봉안되어 있던 철아미타불좌상(보물 994호). 1989년 도난됐다. 문화재청 제공
이후 생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당이나 향교, 서원에 걸린 조상들의 영정 등은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요. 아니 어떤 사람이 다른 가문의 영정을 훔쳐갈 생각을 한단 말입니까. 그런데 그렇게 걸려있는 영정의 가치가 ‘억대’를 호가한다는 소식에 문화재 절도범들의 눈이 뒤집힌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1990년대말~2000년대초 사이에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 가문 영정이 털렸다’는 신고가 문화재사범단속반과 경찰에 들어왔답니다. 보안이 허술한 전국의 사당과, 향교, 서원에 걸린 영정 등의 문화재가 무방비 상태로 절도에 노출된 겁니다.
2018년 무려 18년 만에 회수된 익안대군 이방의(1360~1404·태조의 셋째아들)의 영정(충남 문화재자료 제 329호)이 대표적인 케이스였죠. 2000년 문화재 전문털이범인 서모씨가 영정을 모신 충남 부여 영당(영정을 모신 사당)의 잠금장치를 풀고 감쪽같이 훔쳐갔답니다. 이 유물은 해외(일본)에서 문화재 세탁을 거쳐 국내로 반입됐다가 결국 회수되었습니다.
①임진왜란 때 활약한 매헌 정기룡(1562∼1622) 장군이 남긴 유물(보물 669호) 중 유서 1점이 도난됐다. ②경북 예천 권영가가 종택 소장의 ‘대동운부군옥책판’(보물 878호). ‘대동운부군옥’은 1589년(선조 22년) 편찬된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1990년3~4월 사이에 도난됐다. ③전북 익산 연안 이씨 문중이 소장하던 고문서(보물 651호). 조선 전기 문신인 이숭원(1428∼1491)의 조부에서 손자까지 내린 고문서 중 ‘공신록’과 ‘공신회맹록’이 사라졌다.문화재청 제공
■중국대륙에서 유명했던 안평대군의 글씨
그러나 과정이야 어떻든 일단 돌아왔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1998년 이후 도난당한 문화재가 총 2만2772점(2018년 현재)에 달하는데요. 그런데 아직까지 오리무중인 문화재 가운데 국가지정문화재, 즉 국보와 보물만을 따져도 14건(국보 1건 보물 13건·2021년 6월 현재)에 달합니다.
그 중 돌아오지 않은 유일한 국보가 있습니다. 바로 안평대군(1418~1453)의 진필인 ‘소원화개첩’(국보 238호)입니다. 안평대군이 누구입니까. 당대 조선 사람들이 중국에 가서 “좋은 글씨를 구할 수 있냐”고 물으면 중국 사람들이 “당신네 나라에 제일 가는 사람(안평대군)이 있는데 뭐 때문에 멀리까지 와서 글씨를 사려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고 합니다. 중국의 유명한 글씨를 구입한 조선인들이 귀국해서 작품을 감식해보면 그중 상당수가 안평대군의 글씨였다는 일화도 있습니다.(<연려실기술> ‘전고·필적’)
그러나 안평대군의 진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계유정란(1453년·단종 1년)의 희생자였기에 모든 소장품들이 몰수됐고, 이후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임진왜란·병자호란 등 유독 많은 전란에 시달렸으니 그 사이 어떻게 됐는 지도 알 수 없죠.
①남원 황진가 고문서(보물 942호) 중 교지와 완문 각 1점씩이 1993년 도난되어 28년 동안 돌아오지 않고 있다. ②경주 기림사 비로자나불 복장유물 중 전적(보물 959호) 중 ‘감지은니묘법연화경’과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각 1점씩이 1993년에 사라졌다. ③‘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보물 767-2호). 1993년 이전에 도난된 것으로 알려졌고, 현재 소재불명이다. ④미암 유희춘(1513~1577)의 ‘미암집’ 목판 402점(보물 260호) 중 6점이 1982년 도난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제공
남은 것은 일본 뎬리대(天理大) 소장 ‘몽유도원도’ 발문과 ‘소원화개첩’(개인소장)이 있구요. 최근에는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재송엄상좌귀남서(再送嚴上座歸南序)’, 일본인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70∼1964)의 반출품 중 ‘행서칠언율시출’ 등이 진작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중 국내에 남아있는 안평대군의 유일한 진필이 바로 ‘소원화개첩’입니다.
‘소원화개첩’은 당나라 시인 이상은(812~858)의 칠언율시(‘봉시·峰詩)’를 필서한 건데요. 비단에 행서체로 썼으며 말미에 ‘비해당(匪懈堂)’이라는 안평대군 호의 낙관과 도장이 찍혀있습니다. A4용지보다 작은 크기(가로 16.5cm, 세로 26.5cm)의 56자 소품인데요. 1987년 국보 238호로 지정됐습니다.
이 작품의 소장자는 고미술수집가인 서정철씨인데요. 그러나 이 ‘소원화개첩’은 꼭 20년전인 2001년 소장자인 서씨가 집을 비운 사이 행방을 감췄습니다. 경찰은 2010년 이 ‘소원화개첩’을 인터폴에 국제 수배했는데요. 세상이 다 아는 국보이다보니 해외로 반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 거죠. 그러나 지금 이 순간까지 ‘소원화개첩’의 행방은 오리무중인데요. 국내에 남아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감쪽같이 사라져 지금까지 소재를 알 수 없는 국보 보물들. 2021년 6월 현재 국보 1건(소원화개첩)과 보물 13건이 도난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문화재청 자료
■청와대에서 사라진 ‘안중근 보물’
또 한사례, 낯부끄럽게 ‘사라진 보물’이 한 건 있습니다. 바로 안중근 의사(1879~1910)가 1910년 3월 뤼순(旅順) 감독에서 쓴 유묵입니다. ‘허름한 옷과 거친 음식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은 함께 도를 논할 수 없다(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는 글씨(보물 제569-4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유물의 소유자가 다른 곳도 아닌 ‘청와대’ 이며, 도난장소 역시 ‘청와대’라는 겁니다.
이 유묵은 1976년 3월17일 이도영 당시 홍익대 이사장이 청와대에 기증한 보물인데요. 한데 어느 순간 감쪽같이 사라졌답니다. 언제 사라졌는지 그 시기도 알 수 없답니다.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이 담당관청이지만 다른 곳도 아닌 청와대 소장품이었기에 ‘감히’ 관리·감독하겠다고 나설 수 없었던 겁니다. 안중근 의사의 이 유묵은 분명히 청와대 집무실에 걸려있었다고 합니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청와대가 어수선해졌을 때 사라진 것 같다는 추정도 있구요. 그 이후 정권 교체기에 누군가 슬쩍 가지고 나갔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지금 이 순간 문화재청 인터넷 사이트의 도난문화재 정보란에는 이 유묵의 소유자와 도난장소가 ‘청와대’라 기록돼있습니다. 부끄럽지 않습니까. 안중근 의사의 손끝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유묵이 다른 곳도 아닌 청와대에서 도난되었다니 말입니다.
1994년 보물 1008호인 ‘만국지도’ (왼쪽 사진)가 도난당했다. 이 유물이 장물인줄 알면서도 구입한 문화재사범은 아내가 운영하던 식당 벽지에 꽁꽁 숨겨놓았다가 개인경매업자에게 처분하려다가 덜미가 잡혔다.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이 벽지에 숨겨놓은 ‘만국전도’를 압수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한상진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 제공
■사찰 벽 구멍뚫고…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보물 가운데 전남 순천 송광사 16조사 진영(보물 1043호)이 있습니다. ‘송광사 16조사 진영’은 보조국사 지눌(1158~1210) 등 고려 후기에 활약한 고승 16명의 초상화를 가리키는데요. 1995년 1월 16국사 영정 중 보조·진각·정혜국사의 영정 3점만 남고 13점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경찰은 영정이 걸려 있던 국사전 뒤쪽 흙벽에 지름 1m 가량의 구멍이 난 것으로 보아 절 내부사정을 아는 문화재 전문절도범의 소행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습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유근(1549~1627)의 영정(보물 제 566호) 역시 도난된지 22년이 지났지만 오리무중입니다. 이 영정은 충북 괴산 소수면 사당에 보관됐다가 1999년 3월 사라졌습니다.
이뿐입니까. 1985년 2월 경기 여주 원종대사 혜진탑(보물 7호)의 상륜부 중 보륜과 보주 부분이 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36년이 지나도록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경북 상주 정기룡 장군(1562~1622)의 유물 중 ‘유서’ 1점(보물 669호·1985년 도난), ‘남원 실상사 백장암 석등 보주’(보물 40호·1989년), ‘황진(1550~1593)가 고문서 2점’(보물 942호·1993년), ‘함양 박씨 정랑공파 문중전적-만국전도 1점’(보물 1008호·1993~4년), ‘익산 현등사 연안 이씨 종중 고문서’(보물 651호·1999년), ‘경주 기림사 비로자나불 복장유물’ 중 전적(보물 959-1호·1993년), ‘예천 대동운부군옥책판’(보물 878호·1990년), ‘강화 백련사 철아미타불좌상’(보물 994호·1989년), ‘유희춘 미암집목판’(보물 260호) 6점,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보물 767-2호) 등이 돌아오지 않는 보물입니다.
2000년 도난당한 익안대군 이방의의 영정(충남도 문화재자료 329호). 1734년(영조 10년) 화공 장만득을 불러 그리게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원래 있던 초상화를 참조로 다시 그린 것이다. 익안대군 영정은 일본밀반출-문화재 세탁-국내밀반인 등을 거쳤지만 18년만에 적발되어 2018년 전주 이씨 종중에게 반환되었다.
■문화재 사범의 공소시효는 없다
딱한 생각이 듭니다. 거래가 원천봉쇄되는 도난 문화재를 왜 갖고 있으려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불안에 떨면서 말입니다. 도굴 및 절도 유물을 몰래 갖고 있다가 공소시효(도굴 및 절도범의 공소시효는 10년)가 끝난 이후에 거래하면 되는거 아니냐구요.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왜냐면 현행 문화재보호법 등은 지정문화재든 비지정문화재든 도난문화재를 은닉하거나 사고 파는 행위를 금하고 있습니다.
‘도난 및 도굴 문화재인줄 모르고 구입했다’고 주장하면 되는 거 아니냐구요. 소용없습니다. 2007년부터는 비지정이든 지정이든 도난공고가 난 문화재를 사고 파는 행위 자체가 불법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습니까.
절도 및 도굴범의 공소시효(10년)는 있지만, 문화재 은닉과 거래의 공소시효는 사실상 없는 셈입니다.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도난 및 도굴 문화재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불안에 떨면서 수십년 수백년 잘 감춰두었다 칩시다. 그러다 언젠가 거래를 시도하게 되면 그때부터 범법자가 되는 겁니다.
전북 부안의 마을에 조성된 돌기둥(돌로 만든 솟대) 위에 놓여 있던 돌오리상이 2003년 3월 감쪽같이 사라졌다. 16년간이나 숨겨오던 범인은 수사망이 좁혀지자 문화재청 단속반에 “충북 진천 잣고개가 가면 돌오리상이 있다”고 전화를 걸었다. 결국 출동한 단속반원이 호돌이 조형물 속 빈 공간에 돌오리상을 찾아냈다.한상진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 제공
■‘택배, 전화 한통’…반환사례가 있다.
문화유산을 한자로는 ‘무가지보(無價之寶)’라 하고, 영어로는 ‘priceless’라 하죠. ‘값어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돈으로는 매길 수 없는 그런 보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문화유산을 돈으로 따지는 그런 천박한 풍토가 사라져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문화재사범단속반이 사라진 문화재가 어디 있는지 대충 감은 잡고 있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랍니다. 문화재사범단속반에 ‘도난 및 도굴품이 어디 있는 줄 안다’고 연락해놓고 지정해놓은 곳에 고이 갖다놓는 방법입니다. 터무니없는 얘기라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도난문화재를 찾은 사례가 제법 된답니다. 일례로 앞서 인용한 익안대군 영정도 그렇게 찾았거든요. 도난-해외문화재세탁-국내반입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결국 도난문화재의 매매가 원천봉쇄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영정 소지자가 제3자를 통해 반환했습니다. 문화재단속반의 끈질긴 설득이 만들어낸 결실이었다네요.
그리고 저는 이런 제안도 해봅니다. 자진신고 기간을 두는 방법은 어떨까요. 예전에 ‘도난 도굴품인지 모르고 구입한’ 이른바 선의취득의 케이스도 분명 있을텐데 처벌이 두려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케이스도 있겠죠. 예전에 보면 ‘총기류 자진신고’ 기간을 두던 것이 기억나는데, 문화재의 경우도 어떻습니까.
처벌도 처벌이지만 무사히 회수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피해를 본 분들이 분명 있어서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무사 귀환이 차선책이라면 그 방법도 괜찮지 않을까요.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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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지역의 시도유·무형문화재
#1 철원상노리지경다지기(鐵原上路里地硬다지기) / 민속관
지경다지기는 집을 지을 때 집터를 다지는 작업을 말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하는 협동노동으로, 재앙을 쫓고 축복하는 의식이 담겨 있다. 상노리지경다지기는 터다지기의 단순한 의미를 넘어 전통적인 농경사회의 생활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철원군 동송읍 상노2리에 민속관과 놀이마당이 조성되어 있다.
소재지 : 강원 철원군 동송읍 상길성길 51-15
문의 : 철원군 관광경제과 033-450-4921
#2 화천 위라리칠층석탑(位羅里七層石塔)
고려시대 옛 절터에 남아 있는 7층 석탑이다. 기단부재, 탑몸돌, 지붕돌 등이 사방에 흩어져 있던 것을 수습하여 다시 세운 것으로, 지붕돌과 탑신의 1·2·3층의 몸돌은 원래의 것이고 4층 이상의 몸돌은 1975년 복원 할 때 보충한 것이다. 국보 남계원칠층석탑과 매우 비슷한 양식과 수법을 보이고 있어 두 탑의 제작연대가 비슷한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소재지 : 강원 화천군 하남면 춘화로 3370 (위라리)
문의 : 화천군 문화체육과 033-440-2549
#3 고성 청간정(淸澗亭)
청간천 하구 언덕에 위치한 조선시대 정자로 관동팔경 중 하나이다. 처음 지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중종 15년(1520) 군수 최청이 고쳐 세웠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의 누각형식 정자이다.
소재지 : 강원 고성군 토성면 동해대로 5110 (청간리)
문의 : 고성군 관광문화체육과 033-680-3365
#4 춘천향교(春川鄕校)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 27년(1594)에 다시 지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수리가 있었으며, 한국전쟁으로 불탄 것을 1960년에 복원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과 명륜당·장수루·동재·서재·동무·서무·내삼문 등이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강당으로 교화의 원천이 되었다. 『수춘향약』 등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책들을 소장하고 있다.
소재지 : 강원 춘천시 삭주로 21(교동)
문의 : 춘천시 문화콘텐츠과 033-250-3086
#5 속초김종우가옥(束草金宗友家屋)
18세기 중엽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안채와 행랑채 그리고 부속 창고로 이루어지며 집의 본채인 안채는 온돌 중심의 겹집에 마루가 도입된 ‘ㄱ’ 자 형태이다. 팔작지붕의 5량가 짜임새이며 평면 배치는 우측에 부엌이 있고 전열에는 마루 2칸과 사랑방이 놓이고 후열에는 안방, 뒷방, 뒷사랑이 있다. 자연석 쌓기 기단과 투박하게 다듬은 목재는 독특한 멋을 낸다.
소재지 : 강원 속초시 도문동 1190번지
문의 : 속초시 교육문화체육과 033-639-2958
#6 홍천 수타사대적광전(壽陀寺大寂光殿)
수타사는 신라 성덕왕 7년(708)에 세워 일월사로 불렸다고 전한다. 조선 선조 2년(1569)에 현위치로 옮겨 지으면서 수타사(水墮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 후 폐허로 남아 있던 것을 인조 14년(1636) 공잠대사가 대적광전을 다시 짓고 이후 차례로 건축물을 중건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소재지 : 강원 홍천군 동면 수타사로 473 (덕치리)
문의 : 홍천군 문화관광과 033-430-2424
#7 정선강릉부삼산봉표(旌善江陵府蔘山封標)
봉표란 나라에서 일정한 곳의 출입을 금지하는 경계표로 이 비는 정선군 정선읍 회동리에서 평창군 진부면 장전리로 넘어가는 고개 정상에 자리 하고 있다. 예부터 이 지역은 인삼과 산삼이 많이 나는 곳으로 삼을 캐려는 사람들의 손길이 빈번했다. 이에 나라에서 삼의 주산지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비를 세워 출입을 금하도록 했다.
소재지 : 강원 정선군 정선읍 회동리 산1번지
문의 : 정선군 문화관광과 033-560-2564
#8 횡성풍수원천주교회(橫城豊水院天主敎會)
원래 이곳은 조선 고종 3년(1866) 병인양요로 천주교 탄압이 심해지자 신도들이 피난처로 삼아 모여 살던 곳이다. 고종 27년(1890) 프랑스인 르메르 신부가 1대 신부로 부임해 초가 20칸의 본당을 창설했다. 고딕 건축 양식으로 앞면에는 종탑부가 있고 출입구는 무지개 모양으로 개방되어 있다. 지붕에는 두꺼운 동판을 깔았고 내부에는 기둥이 줄지어 있는데 벽돌 기둥처럼 보이게끔 줄눈을 그려 넣었다.
소재지 : 강원 횡성군 서원면 경강로유현1길 30 (유현리)
문의 : 횡성군 기획감사실 033-340-2223
#9 강릉학산오독떼기(江陵鶴山오독떼기) / 전수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를 중심으로 강릉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민요이다. 언제부터 불렸는지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문헌에 따르면 신라 시대부터 마을마다 즐겨 부르던 농요로 농사의 전 과정을 순서대로 담았다. 어느 원님이 학산마을 왕고개라는 고개를 넘다가 학산리에서 부르는 오독떼기의 농요를 듣고 어찌나 좋았던지 향청으로 불러 노래를 시킨 후 상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628
문의 : 강릉시 문화예술과 033-640-5118
#10 삼척영은사팔상전(三陟靈隱寺八相殿)
영은사는 통일신라 말에 범일조사가 지은 절로 기록에 따르면 팔상전은 조선 인조 19년(1641)에 지었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앞쪽은 겹처마이고 뒤쪽은 홑처마로 되어 있는데, 뒤쪽의 덧서까래를 앞쪽보다 길게 하여 건물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또 지붕 옆면에 방풍판을 달았는데, 모서리를 서로 다르게 하여 균형을 이루고 있어 특이하다.
소재지 : 강원 삼척시 근덕면 궁촌길 1162 (궁촌리)
문의 : 삼척시 문화공보실 033-570-3722
정리. 편집실 자료, 사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외
- 덕수궁에서 즐기는 <2022 봄 궁중문화축전> 5.21.~22. / 덕수궁 즉조당 앞마당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정성조)와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은 오는 21일과 22일 이틀간 오후 5시 덕수궁 즉조당 앞마당에서 고궁음악회「덕수궁 풍류대장」을 개최한다.
<2022 봄 궁중문화축전>과 연계하여 열리는 이번 고궁음악회는 제이티비씨(주)(이하 JTBC) 국악경연프로그램 <풍류대장>의 수상팀이 출연해 우리의 선율을 전한다. <풍류대장>은 국악과 대중음악의 만남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국악이 가진 멋과 매력을 전한 국악 경연 프로그램으로, 50팀이 넘는 국악 예술인이 출연해 독창적인 무대와 흥 넘치는 연주로 전 세계에 국악을 알렸다.
사회는 <풍류대장> 최종 10위로 진출한 최재구 씨가 맡았으며 국악 예술인들의 다채로운 무대로 구성된다. 21일은 서양 악기와 우리 장단의 색다른 조화를 선보인 ‘억스(AUX)’와 국악단 ‘해음’이 출연한다. 억스(AUX)는 <풍류대장> 최종 결승에 진출한 팀으로 이번 공연에서는 '남원 가는 길', '까투리', '사랑가'를 부른다. 4차전에 진출한 해음은 '여창가곡 평롱',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대한이 살았다' 등의 곡을 통해 국악의 매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 평롱(平弄): 풍류가 잘 드러나는 국악 정가의 가곡으로, 평롱(平弄)의 '농(弄)'은 '즐기다, 흥겨워하다' 등의 뜻을 지님
22일에는 <풍류대장>의 최종우승팀인 ‘서도밴드’가 출연한다. ‘서도밴드’는 2019년 한국방송공사(KBS) 국악신예대상 대상, 2019년 제11회 대한민국 대학국악제 대상을 수상한 팀으로 '희망의 아리랑', '뱃노래', '강강술래' 등을 선보여 국악의 새로운 즐거움을 전한다. 사물놀이로 흥을 돋우는 국악팀 ‘이상’은 <풍류대장> 최종 결승에 진출한 팀으로 '자존심‘, '달타령 김미! 김미! 김미!(gimme! gimme! gimme)!', '액맥이타령'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2021년 통일기원세종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명창부 대상(통일부 장관상) 수상자이자 사회를 맡은 최재구 씨도 이번 음악회에서 ‘살이 차오른다’라는 곡을 통해 양일 공연의 흥을 더한다.
고궁음악회 「덕수궁 풍류대장」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royal.cha.go.kr), 한국문화재재단(chf.or.kr), 궁중문화축전(chf.or.kr/fest) 누리집과 궁중문화축전 공식 인스타그램(@royalculturefestival_official)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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