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치고 힘들때 혼자 자주 떠나는것이 여행이다.
그중에서도 섬을 좋아하긴 한다. 인천에서 가까운 서해의 섬을 비롯하여 통영 주위의 섬을 가끔 가보곤 한다.
우리나라의 섬도 아름답고 좋지만, 오늘의 포스팅은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섬을 소개한다.
자료는 CNN에서 선정한 섬인데.. CNN은 여행지를 비롯한 음식 등의 선정하여 발표를 한다.
오늘은 CNN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섬 TOP10을 소개한다.
1위 보라보라섬
보라보라 섬(Bora Bora)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소시에테 제도에 있는 섬이다.
Papeete로부터 230km 떨어져있으며, 호수와 암초에 둘러쌓여 있다. 섬의 중심에는 사화산의 두 봉우리 Pahia와 Otemanu가 남아있으며, 최정상의 높이는 727m 이다.
세계적인 관광지 중의 하나이며,수상 럭셔리 리조트로 유명하다. 가장 큰 시설 중의 하나인 Vaitape는 메인섬의 서쪽해안에 위치해 있으며,호수로 통하는 주 통로와 반대쪽에 위치하고 있다. 섬에서 나는 생산물은 풍부한 코코넛 나무에서 나는 코프라(코코넛 과육을 말린 것)와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등으로 굉장히 제한되어있다.
2008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8,880명의 거주민이 있다고 한다.
2위 카프리섬 – 이탈리아
카프리(이탈리아어: Capri)는 이탈리아 캄파니아주 나폴리현 카프리 섬에 위치한 코무네다. 카프리 섬의 동쪽과 중앙은 카프리에 속하며 서쪽은 아나카프리에 속한다. 신혼 여행객들의 여행지로 인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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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산토리니섬 – 그리스 에게해
산토리니 섬(Santorini, 그리스어: Σαντορίνη)은 그리스 에게 해 남부에 자리잡은 작고 둥근 모양의 화산 군도이며, 그리스 본토와는 약 200km 정도 떨어져 있다. 이 섬은 티라 섬(Thera, 혹은 Thira, 그리스어: Θήρα)이라고도 하며, 키클라데스 제도의 최남단에 자리잡고 있다. 면적은 73 제곱킬로미터이다. 200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13,670명이 거주하고 있다. 행정구역상 티라 시(12,440명)와 오이아(1,230명, 서쪽 테라시아 섬 해안의 268명 포함)로 구성되어 있다. 주변의 무인도인 네아 카메니, 팔라이아 카메니, 아스프로니시, 크리스티아나 섬(모두 티라 시에 속한다)을 포함한 섬의 총 면적은 90.623 제곱킬로미터이다.
4위 카우아이섬 – 하와이
카우아이 섬(Kauaʻi)은 면적 1,430.5km2로 오아후 섬에 이어 하와이 제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울창한 밀림과 반짝이는 해변의 변화가 풍부하여 세계적인 영화인들과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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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보라카이 – 필리핀
보라카이 섬(Boracay)은 필리핀의 섬으로 길이는 12km로 총면적은 11km2이며 인구는 약 1만 3,000명이다. 보라카이 섬과 해변은 세계적인 여행 잡지와 여행사로부터 좋은 평을 얻어왔다. 보라카이 섬은 아클란 주 말라이, 마녹마녹 바랑가이에 위치해 있다. 보라카이는 필리핀 관광국(Philippine Tourism Authority)과 아클란 주 정부에서 관리한다. 화이트 비치 뿐만 아니라, 보라카이는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휴양지이다. 또한, 밤에는 해변가에 위치한 클럽, 펍에 관광객이 북적인다.
6위 몰디브 – 인도양
몰디브 공화국(디베히어: ދިވެހިރާއްޖޭގެޖުމުޙޫރިއްޔާ 디베히 라제이제 줌후리야, 영어: Republic of Maldives)는 인도양 중북부에 있는 섬나라로, 인도와 스리랑카 남서쪽에 자리한다. 국토는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26개의 환초로 이루어져 있으며, 섬의 총수는 1,192 개이다. 수도인 말레는 군주제 시절에 술탄이 왕궁을 짓고 다스리던 곳이다.
7위 마우이섬 – 하와이
마우이섬(Māui)은 면적 1883.5 km2으로 하와이 제도에서 하와이 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으로 화산의 용암으로 형성된 두 개의 섬이 하나로 연결된 화산섬이다. 오아후섬에서 약 120km 정도 떨어져 있는 마우이 섬은, 인구 117,644명(2000텬)에 연간 3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드는 곳이다. 마우이 섬에는 행정적으로 몰로카이섬과 라나이섬, 카호올라웨섬을 관할하는 마우이 군 자치 정부가 있다.
8위 모레아 – 폴리네시아 타히티
타히티어로 노란색 도마뱀 이라는 뜻이다. 150만 250만 년 전에 화산 활동으로 형성되었다. 근사한 경치와 더불어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수도인 파페에테와 근접해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특히 신혼여행지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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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위 비에케스 – 카브리해
비에케스 섬(스페인어: Isla de Vieques)은 카리브해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섬이다. 푸에르토리코 본토에서 남동쪽으로 약 10Km 근해, 버진아일랜드 앞바다에 떠 있는 섬이다. 또한 지리적으로도 버진아일랜드와 가까워 쿨레브라 섬과 함께 스패니쉬 버진 아일랜드를 형성하고 있는 섬이기도 하다. 면적은 약 150 km², 인구는 9531명 (2000년), 중심지는 비에케스이다.
10위 발리 – 인도네시아
발리섬(인도네시아어: Bali)은 인도네시아의 섬으로 자와 섬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구는 약 310만 명이다.
소순다 열도에 속한 섬으로 자와 섬에서 북쪽으로 3.2 km 떨어져 있다. 길이 153 km, 폭 112 km 크기로 면적은 5,700 km²이다. 가장 높은 산은 섬 북동부에 위치한 3,148 m의 아궁 산으로 1963년에도 분화한 적이 있는 활화산이다.
선비들이 꿈에도 그리던 그곳...'관동팔경'
관동팔경은 많은 시인과 화가들의 손끝에서 예술로 승화되었다. 아름다운 풍경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고, 그 예술은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이 되어 전해졌다. 보통 사람들이 태어난 곳에서 멀리 여행하는 것이 어렵던 시절, 그림과 시 속의 풍경은 그곳으로 여행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정조 역시 관동팔경을 무척이나 가보고 싶어했으나, 김홍도를 보내 그림을 그려 오라 시키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언제든지 그림 속 그곳에 몇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지금, 그곳을 찾아 길을 떠난다.
- 자연과 하나되는 아름다움, 죽서루
관동팔경 중 유일하게 바닷가가 아닌 강변에 있는 죽서루에서 강원도의 관동팔경 여행을 시작한다. “누가 하늘을 도와 이 아름다운 누각을 세웠는가”라는 감탄으로 시작하는 율곡이이의 시구처럼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죽서루는, 오십천 절벽의 자연 지형과 어울리는 건축 미학이 돋보이는 곳이다. 누각을 자세히 살펴보면 절벽의 바위를 그대로 두고 지어 누각 하층의 기둥은 길이가 제각각 다르고 방향에 따라 개수도 다르다. 북측과 남측 면의 칸 수가 다른 것도 주변의 지형지물과 균형을 맞추어 남측의 암반을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사용하고자 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죽서루는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의‘죽서루’라는 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1190년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누각은 1403년(조선 태종 3년) 삼척부사 김효손이 옛 터에다 새로 지은 이후 10여 차례의 중수(重修)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누각에 오르니 자연과 내가 하나되는 경지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서는 기분이 든다. 정철이 노래하고 정선이 담아낸 그 당시엔 푸른 산이 눈앞에 펼쳐졌겠지만, 지금은 아파트와 최신식 건물들이 들어서 아쉽게도 그 풍경을 볼 수 없다. 죽서루에 올라 바람을 맞으며 주변의 환경을 바꾸어놓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정철, 정선과 함께 어울리는 상상을 해본다.
- 맑은 호수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경포대
경포해수욕장은 동해안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해수욕장 중 하나지만, 정작 그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경포대에 다녀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다 안쪽에 자리한 경포호를 돌아 언덕을 오르면 전망이 탁 트인 경포대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경포대 누각 안에도 죽서루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의 시와 문구를 적은 현판이 남아 있는데, 그중에는 강릉이 고향인 이이가 열 살에 지었다는 시구와 숙종의 ‘어제시’도 남아 있다.
예로부터 많은 예인(藝人)들이 경포대에서 숱한 이야기들을 남겼는데, 그들의 풍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밤이면 경포호에는 하늘에 하나, 바다에 둘, 호수에 셋, 술잔에 넷, 님의 눈동자에 다섯……, 이렇게 모두 다섯 개의 달이 뜬다는 것이다. 앞으로 강릉에 가면 바다만 보고 떠날 것이 아니라 잔잔한 호수에 들러 다섯 개의 달을 찾아보며 풍류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 불길에서 건진 보물, 낙산사
낙산사를 찾으며 2005년 봄 가슴 졸이던 뉴스를 떠올린다. 큰 산불로 천년 고찰과 보물들이 불타 사라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날 이후, 낙산사는 오랜 발굴과 고증을 거쳐 새롭게 재건되었다.
해안 절벽 위에 들어선 낙산사는 그 일대의 풍경이 모두 장관이지만, 특히 그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의상대는 제일의 명소로 손꼽힌다. 유명한 낙락장송(落落長松)은 불길에 사라졌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풍경은 아직 그대로다.
또한 역사가 깊은 사찰인 만큼 보물급 문화재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조선시대 초기, 세조가 이곳에 행차하여 절 입구에 세웠다는 무지개 모양의 돌문인 홍예문(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3호), 1467년(조선 세조 13년) 수정으로 만든 염주와 여의주를 탑 속에 봉안하며 본래 3층이던 것을 7층으로 조성한 낙산사 칠층석탑(보물 제499호), 화려한 보관을 쓰고 온몸에는 구슬 장식이 드리워져 있는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2호), 부처님의 사리가 발견된 해수관음공중사리탑과 탑비(보물 제1723호) 등을 차례로 돌아보는 것은 낙산사에서 맛볼 수 있는 큰 즐거움이다.
보물찾기를 하며 오른 낙산사의 가장 꼭대기. 바다를 향해 우뚝 선 해수관음상 앞에는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의 계시를 받고 지었다는 설화 때문인지, 기도가 꼭 이루어질 것이라는믿음으로 찾아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간직한 이곳이 더 이상 산불에 스러지지 않도록 잘 지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다음 관동팔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그림이 되는 바다, 청간정
청간정은 관동팔경의 다른 곳에 비하면 소박한 매력을 지닌곳이다. 누각의 규모나 지어진 방식이 화려하기보다 정갈하다.
청간정은 설악산에서 발원한 청간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들어서 있는데, 굽이치는 하천과 탁 트인 바다, 그 한가운데 죽도까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청간정은 여러 차례의 개보수를 거쳤는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1981년 새롭게 해체 복원한 것이다. 그리고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인데 안쪽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절경을 감상하고 적은 휘호까지 걸려 있어 우리나라 전직 두 대통령의 친필을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청간정을 지나 그 위로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가 관동팔경으로 꼽히지만 더 이상은 가볼 수 없다.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타까움을 정선과 김홍도의 그림으로 달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 함께 가보면 좋을 곳들
'관동팔경(關東八景)'
관동지방(강원도)의 8가지 명승지를 말한다. 영동 지방을 따라 남북으로 늘어서 있다. 팔경 중 망양정과 월송정이 소재하는 울진군은 현재 경상북도 소속이지만 관동팔경이란 말이 만들어졌던 당시에는 강원도 소속이었다.
팔경 중 대부분이 신라의 전설적인 화랑 신라사선과 관련된 곳들이다.
남북분단으로 인해 관동팔경을 모두 방문하는 것은 월북을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며, 고령층에서나 간간히 모두 방문한 사람을 볼 수 있다.
이중환은 저서인 택리지에서 낙산사 대신 청초호, 월송정 대신 시중대를 넣었다. 그리고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7경은 언급했으나 월송정은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망양정이 평해군에 위치해 월송정과 가까웠기 때문에 멀어서 안갔다고 보기도 어렵다. 즉 8경중 6경은 뭘로 해도 들어가지만 나머지 2경은 공식적으로는 낙산사와 월송정이며 비공식적으로 이들 대신 청초호와 시중대가 들어가기도 한다는걸 알수 있다.
2. 상세[편집]
김홍도가 그린 총석정 그림
북한 강원도 통천군 고저읍 총석리 바닷가에 있는 누각. 바다 위에 빽빽이 솟아 있는 돌기둥(총석)위에 세워 총석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무암이 오랜 세월 비바람과 파도에 부딪혀 그 면들이 갈려지고 떨어지면서 생긴 육각 혹은 사각 모양을 한 돌기둥으로 이뤄진 총석들은 동해와 어우려져 예로부터 신선이 즐길 경관이라 불리었다.
고려의 김극기와 안축, 조선의 성현과 김창업 등이 이곳을 찾아 경관을 읊은 이들의 시문과 그림이 전해지고 있다.
관동팔경 안내판
북한 강원도 고성군 삼일포리에 있는 자연호수.
본래 만이었는데 남강의 모래가 바닷물의 작용을 받아 쌓이면서 입구를 막아 생긴 석호이다. 신라 시대 사선이 뱃놀이하다가 절경에 매료되어 삼 일간 돌아가는 것을 잊어 삼일포라 불린다는 서설이 있다. 북한 천연 기념물 제 218호이다.
수면이 맑고 36개의 봉우리가 호수에 비치어 절경을 이루는 삼일포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호수 중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꼽힌다. 금강산관광이 1998년 시작되면서 삼일포를 직접 찾을 수 있게 되었었다.
관동팔경 안내판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에 위치한 누각으로,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이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중종 15년(1520)에 간성군수 최청이 수리하였고, 갑신정변 당시 불타 없어진 것을 1928년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추녀 밑에 걸린 현판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이다.
설악산에서 흘러나오는 청간천과 바다가 만나는 구릉 위에 있어 이곳에서 바라보는 동해안 풍경이 일품이다.
관동팔경 안내판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오봉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사찰로서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 도량 중 하나이다.
신라 문무왕 11년(671)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낙산은 관세음보살이 머무르는 곳이라는 뜻으로 범어 보타락가(Poltalaka)에서 유래했다.
임진왜란과 6.25전쟁을 비롯해 주변 산불로 여러 차례 화재를 경험한 낙산사는 2005년 강원도 산불로 다시 사찰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는 위기를 겪었으나 현재 복원이 마무리되었다.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1362호)과 칠층석탑(보물 제499호)뿐만 아니라 의상대사의 전설이 깃든 홍련암과 의상대 등 사찰 곳곳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관동팔경 안내판
강원도 강릉시 저동의 경포호 북쪽에 있는 누각으로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포대는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고려 충숙왕 13년(1326)에 인월사 옛터에 창건하였다.
내부에는 숙종이 직접 지은 시와 율곡 이이가 열 살때 지었다는 <경포대부>를 비롯해 여러 명사의 글이 걸려있다.
누각 주위에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알맞게 우거져 운치 있는 경관을 이루고 있다. 경포대와 주변 호수는 1982년 경포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바닷게에는 경포대 해수욕장이 있다.
관동팔경 안내판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있는 누각으로 보물 제213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축연대는 미상이나, 고려 말 이승휴의 <동안거사문집>에 의하면 고려 원종 7년(1266)에 이승휴가 이곳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것을 근거로 해 그 이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조선 태종 3년(1403) 삼척부의 수령인 김효손이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누각 동쪽의 죽상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인 죽죽선녀의 집을 따와 죽서루라 하였다고 한다.
삼척시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을 내려다보며 벼랑 위에 서 있는 죽서루는 자연 암반을 초석 삼아 높고 낮게 기둥을 세워서 그 자체로 자연의 일부라 여겨질 만큼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다.
관동팔경 안내판
이 정자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넓은 동해를 바라보며 산 정상에 날을 듯 앉아 아름다운 경관 자랑하고 있다.
원래 망양정은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 있던 것을 조선 철종 11년(1860)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 후 허물어져 없어진 것을 1958년에 중건하였으나, 다시 심하게 낡아 2005년에 완전 해체하고 새로 지었다.
특히 조선 숙종은 관동팔경 중 망양정 경치가 최고라 하여 '관동제일루'란 현판을 하사하였으며, 망양정의 절경을 읊은 유명한 시와 글로는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 , 정철의 관동별곡등이 전해오며, 그림으로는 정선의 배ㄱ납병, 관동명승첩에 있는 망양정도가 유명하다.
관동팔경 안내판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누각이다. 신라의 네 화랑이 달밤에 이곳 솔밭에서 놀다 갔다 하여 월송정으로 불렀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중국 월나라의 소나무를 가져와 심었기 때문에 월송이라 했다고도 한다.
고려 충숙왕 13년(1326) 존무사 박숙이 처음으로 지었다.
조선 중기 연산군 때 중건하였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낡아 무너지자 고을 사람들이 다시 지었으나 일본군이 강제로 철거하여 터만 남았다. 1969년 울진 출신의 재일교포들이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 모습과 달라 해체하고 1980년 고려시대 양식을 본떠서 지금의 정자로 복원하였다. 망양정과 함께 동해안에서 손꼽히는 일출 명소이다.
관동팔경 안내판
3. 참고항목[편집]
아름다운 암자와 사찰
한국의 아름다운 사찰
1,서산 간월암
서산 간월도리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조선초 무학대사가 창건했습니다
간조시 물과 연결되고 서해 낙조의 명소이다로 알려져있지요
만조시 섬이되는 신비의섬, 간월암
2,삼천포 대방사
도안스님의 개인사찰로 삼천포 창선대교가 한눈에 보이며
특히 야간 조망이 아름답다
3,전북 김제 망해사
신라 문무왕 11년에 부설스님이 창건
김제 진봉산 기슭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고군산열도가 아스라히 펼쳐보인다
4,경남 고성 문수암
신라화랑의 수도처로 선덕여왕때 의상조사가 걸인모습을 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에 이끌려 무이산을 오르다
해동 절경지에 감탄해 암자를 지었다고한다
마음이 선한사람이 오르면
문수보살이 보인다는 소문이 널리퍼져 있다
5,전남 해남 미항사
호남 정맥의 끝이자 한반도의 끝산으로 끝없이 펼쳐진 기암괴석의 달마산모습
성난 짐승의 이빨처럼 봉우리가 솟아올라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려지기도 한다
6,남해 보리암
남해군 상주군에 위치해 있으며 신문왕 3년(683년)에
원효대사가 초당을 지었다고 한다
이성계가 조선창건을 위한 100일기도를 한 곳으로
작은 금강산이라 불릴만큼 남해의 수려한 청정해역이
한눈에 펼쳐보이는 절경을 자랑한다
7,강화 석모도 보문사
한국의 3대 해상관음기도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635년 선덕여왕 4년에 마을에 살던 어부의
그물에 불상과 나한상 22구를 건져 지어졌다고 한다
8,전남구레 사성암
백제 성왕 22년에 화엄사를 창건하고 이듬해 구례오산 530m위치에 암자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하늘이 감춘 지리산 벼랑 끝 암자이며
원효,의상,도선, 진각 네 고승이 수도한 암자라 하여 사성암이라고 한다
멀리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며 절경을 자랑한다
9, 남양주 수종사
동방 사찰 제일의 사찰입니다 창건연대가 불확실하고
세조 때 창건설화만 전해오고 있습니다
남양주시 은길산 중턱에 위치하며 절에서 내려다보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10,경기도 여주 신륵사
신라 진평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했습니다
남한강변 봉미산기슭에 자리잡은 천년고찰로
강변의 뗏목이 한폭의 그림입니다.
11,포항 오어사
신라 진평왕때 자장율사가 세운 절로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수도 정진한 곳입니다
호수로 감싸안은 절의 오붓함이 돋보이는 사찰입니다
12,충북 제천 정방사
신라문무왕2년에 의상대사가 건립했습니다
제천 금수산 해발1000m고지에 위치하며 청풍호의 풍경이
삼라만상을 모두 잊게 할 정도로 전망이 뛰어납니다
13,지리산 천운사
신라 흥덕왕때 창건하여 임진왜란때 소실 되었고 조선영조때 제건했다고 합니다
남방 제일사찰로 충렬왕이 칭호를 하사하였다하며,산사의 고요한 아름다움이 특징입니다
14,전남 곡성 태안사통일신라 경덕왕때 동리신파를 일으킨 혜철스님이 지었다고 전해옵니다남도의 호젓한 절집으로 산사가 아름답기로 입 소문이 났습니다
15, 여수 향일암지은시기는 알수없으나 임진왜란때 소실하여 숙종41년에 인묵대사가 재건하였다고합니다
출처:나무위키
광복 제77주년 특집
영하 40도서 토굴 팠던 그 땅에… '同族如天' 첫 추모비
[오늘의 세상]
6500㎞ 강제이주 한인들의 카자흐 첫 정착지에 추모공원 기공식
지난 26일 찾은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의 바슈토베 언덕은 황량했다. 1937년 10월 러시아 극동 지방에 살던 고려인이 강제 이주돼 최초로 정착한 곳이지만, 허허벌판에 표지석 같은 기념비 하나만 서 있었다. 얕은 깊이의 토굴 흔적 두 개와 수백 개의 묘지만이 바슈토베 언덕에 한때 사람이 살았다는 유일한 흔적이었다. 고려인 3세라는 인근 마을 주민은 "80여년 전 늦가을에 맨몸으로 이곳까지 내몰린 선조들은 손으로 토굴을 파고 농사를 지어 살아남았다"고 했다.
망국(亡國)의 한이 서린 이곳 바슈토베 언덕에 고려인을 추모하고 기리는 공원이 조성된다. 조선일보와 통일문화연구원, 남양주 현대병원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주와 함께 26일 바슈토베 언덕에서 고려인 최초 정착지 추모공원(한국·카자흐스탄 우호 기념공원) 기공식을 갖고, 새로운 고려인 추모비를 세웠다. 추모비엔 동족여천(同族如天·동포를 하늘과 같이 섬기라)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추모공원 조성 사업은 향후 10년간 추진된다. 독립 유공자 추모비 건설 및 고려인 거주 토굴집 복원, 전시관 건립 등을 우선 검토할 예정이라고 통일문화연구원은 전했다.
바슈토베 언덕은 카자흐스탄 동남부 우슈토베역에서 약 2㎞ 떨어져 있다. 러시아 극동 지방에서 약 6500㎞를 열차로 달려 1937년 10월 9일 우슈토베역에 도착한 한인들은 이곳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일제를 피해 조국에서 이역만리(異域萬里) 러시아로 쫓겨나듯 이주한 데 이어, 소련의 정책으로 다시 한 번 삶의 터전을 강제로 바꿔야 했다.
어머니가 세 살 때부터 18년간 우슈토베에 살았다는 전 로지온(고려인 3세·51)씨는 "수없이 많은 고려인이 영하 40도에 달하는 추위와 굶주림을 못 견디고 죽었다는 참상을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여러 번 전해 들었다"고 했다. 전씨의 외삼촌도 정착 과정에서 숨졌다. 해외 한인사(史) 전문가인 김 게르만 건국대 초빙교수는 "우슈토베 지역은 물론이고 전체 고려인 사회에서도 '1937년 또는 1938년생'은 극히 드물었다"며 "강제 이주 전후로 태어난 영·유아들이 극한 환경에서 많이 죽었다는 얘기"라고 했다.
바슈토베는 현재 약 50만명에 달하는 유라시아 고려인들의 '뿌리'와 같은 지역이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12년 한·중앙아시아 친선협회와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 주도로 '정착 기념비'가 세워진 걸 빼면 별다른 추모·기념 사업도 없었다. 그 기념비 역시 추모 의미보다는 그곳이 '고려인 최초 정착지'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에 가깝다. 추모공원 건립사업 공동대회장으로 위촉된 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은 "우리가 해외 동포들의 삶과 역사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며 "소외 동포들을 한 울타리로 엮고 주변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통일 기반 조성에 필수적인 사업"이라고 했다.
추모 공원이 첫 삽을 떼는 데엔 지난해부터 쌓아온 '신뢰'가 한몫했다. 조선일보와 통일문화연구원은 지난해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중앙아시아 통일과나눔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한글 교육에 앞장섰고, 현대병원도 대대적인 의료 봉사를 해 왔다. 올해는 전문의 9명을 포함해 중·고등학생부터 의대생, 통역까지 약 80명이 봉사에 참가해 1200여 명의 현지인을 진료했다. 현대병원은 지난해 시작한 의료 봉사를 10년에 걸쳐 계속할 계획이다. 김부섭 현대병원장은 "의료 봉사를 계기로 학생 봉사단이 우슈토베 지역을 찾아 추모하는 데에도 앞장설 계획"이라고 했다. 의료 봉사로 이곳을 찾은 유수정(16) 학생은 "지금까지 잘 몰랐지만 꼭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를 배울 수 있었다"며 "추모비 설립이나 의료 봉사 같은 '민간 외교'의 필요성도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엔 한국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현지에서도 바탈로바 아만디카 가바소비차 알마티주(州) 부지사, 김로만 우헤노비치 하원 의원, 베쿠바세일하나 이브라이모비차 카라탈구 노병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홍준호 조선일보 발행인은 "나라가 힘이 없고 망하면 백성들이 어떤 수난을 당하는지 보고 배우는 역사와 추모의 장(場)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29/20190729000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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