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문화재방송.한국 www.tntv.kr

문화유산 답사기 310

[문화유산 답사기]'동학농민혁명운동'법정 기념일, 5월 11일은 황토현 첫 승전일

조병갑은 1890년대(고종 30년) 전남 고부군수를 지내면서 농민들로부터 무리한 세미를 거두고, 백성들에게 무고한 죄명을 씌워 2만 냥이 넘는 돈을 수탈하는가 하면 부친의 頌德碑閣(송덕비각)을 세운다는 명목으로 백성들에게 1,000여 냥의 비각세를 강제로 징수하였다. 또한 시급하지도 않은 저수지(만석보)를 축조한다고 농민들을 강제동원하고, 수세(水稅) 700여 섬을 착복하는 등 온갖 탐학을 자행했다. 격노한 군민들은 군수의 虐政(학정)에 항의했으나, 조병갑은 오히려 수탈을 가중함으로써 1894년 마침내 전봉준이가 인근농민을 규합해 고부관아 등을 습격했으니 조병갑의 학정은 동학농민반란(조선왕조입장에서 보면)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 조병갑탄압에 분노한 농민반란이 어찌나 크게 확산되고 격렬했는지 조정에서 ..

[나의 이야기]외국 사진작가들을 매료시키는 한국의 40 景(CNN 발표)

40위 사릉 (Sareung) 위치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리 조선 제6대왕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이다. 39위 삼부연폭포 (Sambuyeon Falls) 위치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 높이 20m의 폭포로 폭포수가 높은 절벽에서 세 번 꺾여 떨어지고 세 군데의 가마솥 같이 생긴 못이 있다고 하여 삼부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38위 남한산성 (Namhansanseong Fortress) 위치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북한산성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 중의 하나로, 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4년(인조 2년)에 축성하였다. 37위 선정릉 (Seonjeongneung) 위치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서울에 있는 조선 왕릉으로 삼릉공원이라고도..

[4월28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일]임진왜란 격전지, 이순신 장군의 자취를 따라

- 견내량 옥포해전과 한산대첩 현장 23전 23승, 그는 싸움에서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었고 이런 그를 두고 우리는 '불멸의 이순신'이라 한다. 우리 역사인물 가운데 세종대왕과 더불어 이순신에 대한 관심이 유독 큰 까닭이다. 업적 못지않게 인간적인 면모도 한몫을 한다. 사령관으로서 카리스마와 백성과 부하에 대한 애정, 부모에 대한 효성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더해 1960~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이순신 유적지 성역화는 그를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자취를 따라 떠나는 여행길은 통영 견내량(見乃梁)에서 시작된다. 통영에서 거제로 가는 길 끝에 두 다리가 있다. 하나는 옛 거제대교이고 또 하나는 거제대교다. 거제대교 입구에 그럴듯한 건물이 서 있는데 통영타워 전망대이다. 전..

[문화유산 답사기] 의로움을 실천한 옛사람의 얼을 따라

-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이 뿜어내는 씩씩한 기운 합천 영암사지(靈岩寺址, 사적 제131호)는 황매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터다. 절터 앞에 서면 우선 모산재가 뿜어내는 기상에 압도당한다. 폐사지의 스산한 기운 따위는 없다. 대신에 씩씩함이 느껴진다.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과 삼층석탑(보물 제480호), 그리고 귀부(보물 제489호)는 절터에서 나온 건물 받침돌, 각종 기와조각들과 어우러져 있다. 쌍사자석등에 얽힌 마을 사람들의 충정은 유명하다. 1933년께 일본인이 반출하려던 것을 마을사람들이 막아 면사무소에 보관해 놓았다가 1959년 절터에 암자를 세우고 원래 자리로 옮겨왔다. 석등 화사석 네 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새겨져 있다. 사천왕은 불법을 지키는 신이다. 그러니 이 석등을 지키려는 ..

[문화유산 답사기]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제주도 용천동굴'의 비경, 20만년전 용암이 뚫은 3.6km 터널… 신라시대 유물도< 전체 비공개>

제주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의 한 맨홀. 입구를 열자 마치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지하 은신처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심스럽게 계단으로 10m가량 내려가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엄습했다. 두려운 마음에 조심스레 손전등을 켜자 눈앞에 찬란한 황금색 동굴이 나타났다. 용암이 땅속을 지나가면서 만들어진 터널 형태의 이 동굴은 내부 현무암 분석 결과 최소 20만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됐다. 용천동굴은 2005년 5월 전봇대를 박던 한국전력 직원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고 2007년 7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이후 학술적 탐사 이외에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 세계 유일의 황금색 용암동굴 용천동굴은 총 길이 3.6km, 최대 폭 14m, 높이 20m에 달..

[문화유산 답사기]세계적으로 이름난 10만여 년 전의 4대 '용암동굴'과 세계에서 가장 긴 '제주 어음리 빌레못동굴(濟州 於音里 빌레못洞窟)'

△용이 살았던 김녕사굴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98호 김녕사굴은 약 705m의 길이로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김녕사굴은 원래 만장굴과 하나로 이어진 화산 동굴계였으나 천장이 붕괴하면서 두 개의 동굴로 나뉘었다. 동굴 바닥에는 용암이 흘러내린 흔적이 남아있고 동굴 끝에는 폭포 모양으로 굳은 용암이 나타나 특이한 경관을 이룬다. 또한 천장 높이와 동굴 통로가 매우 넓고 벽면에는 규산화가 많이 부착되어 있어 신비스러움을 자아낸다. 김녕사굴에서 '사굴'이라는 명칭은 동굴이 지니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동굴 속에는 해마다 15세 된 소녀를 바치지 않으면 갖가지 변괴를 부리는 거대한 구렁이가 살고 있었는데 1515년(중종 10) 3월 당시 제주판관 서련(徐憐)이 그 구렁이를 퇴치했다..

[위대한 문화유산]외규장각 '의궤'...세계가 놀란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145년만에 귀환

조선왕실 의궤(儀軌)가 일본 궁내성(宮內省)에 넘어간 것은 1922년 5월. 조선을 대표하는 조선총독부가 일본에 “기증(寄贈)” 한다는 형식이었다. 외규장각 의궤(1)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 조선왕실 문화의 보고, 외규장각 조선의 22대 왕 정조(正祖)는 1776년 25세의 젊은 나이로 왕위에 오른 해에 규장각을 정식 국가기관으로 발족하였다. 규장각은 조선왕조의 왕실 도서관 겸 학술연구기관으로 출발하여 출판과 정책 연구의 기능까지 발휘한 특별한 기구이다. 이후 1782년에 강화도 행궁(行宮)에 외규장각을 완공하여 왕실의 중요한 자료들을 옮겨서 보다 체계적이며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하였다. 규장각에 보관하던 임금이 보던 어람용 의궤가 강화도로 옮겨진 것도 바로 이때이다. 이로써 외규장각은 규장각의 분소와 같..

[3.1운동 102주년 특집]기미년 3.1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외국인들

3.1운동 102년 전 역사의 현장 3.1운동은 집회회수 1,542회, 참가인원수 202만3,089명, 사망자수 7,509명, 부상자 1만5,961명, 검거자 5만2,770명, 불탄 교회 47개소, 학교 2개교, 민가 715채나 되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투쟁했던 거대한 독립운동입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진 설움 가득한 외침은 또 다른 해외 식민지 국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중국의 5·4 운동, 간디의 독립운동에도 자극을 준 울림이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있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3.1운동은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건립하는 것에도 영향을 주었습니..

[문화유산 답사기]서민 생활을 독창적으로 그려낸 천재 김홍도의 서화첩은 보물(제527호)인데 ,도화서에서 쫓겨난 신윤복은 왜 국보(135호)일까

조선시대 쌍벽을 이루는 풍속화가 金弘道와 申潤福 사제지간이자 연인으로 그려지는 '바람의 화원'과 달리 실제 두 사람이 교류한 흔적은 역사적으로 찾아볼 수 없다. 모두 화원 가문 출신으로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김홍도는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반면 신윤복은 당대 실력을 인정받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이고, 역사적 기록도 찾아보기 힘들다. 檀園 金弘道는 1745년 김해 김씨 김진창의 증손으로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외가가 대대로 화원을 배출한 미술가 집안이었기에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났고,일곱살에 도화서 김응환의 제자가 됐다. 김응환은 당시 유명한 문인 화가인 강세황에게 김홍도를 소개했으며,도화서에 정식으로 들어간 김홍도는 1771년 왕세손인 이산의 초상화를 그릴 만큼 화원으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

[문화유산 답사기] ​ 1968년 1. 21 무장공비 습격 현장과 ​1979년 10.26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을 거둔 궁정동 안가 사이의 칠궁(사적 제149호)에 얽힌 기구한 조선 임금 어머니들의 이야기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장희빈의 남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쁜 남자 |문화·체육에디터 겸 스포츠경향 편집국장 lkh@khan.co.kr 청와대 영빈관 서쪽을 걷다보면 고즈넉한 자하문 길의 풍취를 느낄 수 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심 한복판에 새소리가 제법 청아하고, 인적조차 드문 길이 나 있다니…. 청와대 경비를 위해 쳐놓은 바리케이트가 예사롭지 않은 풍경을 암시하고 있다. 무엇이 그리 예사롭지 않다는 건가. 영빈관의 건너편에 ‘무궁화동산’이라 해서 작은 공원이 있다. 입구에 만들어놓은 안내석에는 알듯 모를듯, 모호한 내용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국민과 더불어 살아 숨쉬는 공간을 만들고자 안가(안전가옥)를 헐어내고 조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웠던 민주화의 길을 되돌아보는 역사의 배움터로 사랑 ..

[설 명절 특집 | 한국의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찾아서 <비밀로 남겨두고 싶은 이 땅의 마지막 비경>

월간 산 574호 글 월간산 신준범 기자 사진 김영선 객원기자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세상(世上)을 떠난 별천지(別天地)를 이르는 말 설 명절에도 출입이 자유롭지 못 하신 문화재 방송 블벗님들이 사진으로라도 절경을 감상하시도록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마지막 파라다이스 버릿골·큰터골 최초 공개! 자연 그대로의 싱싱함이 펄떡펄떡 살아 있는 버릿골. 개척산행의 즐거움 앞에 한여름 폭염도 자취를 감췄다. “버릿골은 버릿소가 볼 만하지.” 덕풍산장 할아버지의 말은 최소한의 칭찬이었다. 강원도 삼척, 가장 깊은 첩첩산중에서, 다시 등산로가 없는 계곡을 따라 2시간 가까이 올랐다. 섬세한 폭포와 물웅덩이는 사람을 빨아 당기는 매력이 있는 물의 블랙홀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물과 가장 단단한 바위가..

[문화유산 답사기]찬란했던 시간 속으로의 산책...'옛 절터를 찾아'<수난의 역사를 딛고…귀향 준비 마친 '국보 제101호 지광국사 현모탑'>

1957년 잘못 복원된 1만2000조각…2016년 전면 해체 후 작업 국보 101호 지광국사 현묘탑은 그 아름다움과 달리 숱한 수난을 겪었다. 한국전쟁 때인 1950년엔 폭격을 맞아 산산조각 났고(왼쪽 사진), 1911년엔 법천사터에서 반출돼 서울 명동으로 옮겨졌으며(가운데), 1957년 복원됐지만 불완전해 늘 훼손 위험을 안고 있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110년 상처 씻은 ‘지광국사탑’ 고향 간다 입력 :2021-01-20 17:12ㅣ 수정 : 2021-01-21 02:25 원주 법천사지에 있던 ‘국보’ 고려 승탑 일제강점기 서울·오사카로 잇단 반출 한국전쟁 때 파손돼 시멘트·철근 덧칠 문화재청, 보존처리 작업 5년 만에 끝 복원 장소는 원위치·전시관 등 논의 중 ▲ 국보 제101호 원주 법천사지 ..

[세계문화유산]BBC 선정 죽기 전 꼭 봐야 할 여행지 1위, 미국 그랜드 캐년 및 앤텔로프 캐년...수백만 년간 침식·풍화작용으로 빚어진 사암지역

Lower Antelope Canyon 수백만 년간 침식·풍화작용으로 빚어진 사암지역… 어퍼Upper·로어Lower 2개 지구로 나뉘어 빗물이 소용돌이치며 흘러내려 소용돌이무늬가 생긴 앤텔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 수백만 년 동안 물과 바람의 침식, 풍화 작용으로 빚어진 사암 지역으로 빛의 양과 시간대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협곡의 신비감 넘치는 풍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경관 중 하나인 앤텔로프 캐니언은 어퍼Upper 캐니언과 로어Lower 캐니언으로 나뉜다. Lower Antelope Canyon 로어 앤텔로프 캐니언Lower Antelope Canyon을 들어가다 보면 온통 주변에 소용돌이무늬로 만들어진 사암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한동안 멍한..

[문화유산 답사기]폐지 수집 손수레에서 발견한 이상한 책자는 '하피첩'...7억 5천만 원에 팔려

하피첩의 '하피(霞帔)'란 중국 당송(唐宋) 시대 신부가 입은 혼례복을 말하는 데, 조선 시대에는 왕실의 비(妃), 빈(嬪)들이 입던 옷이다. 여기에서 하피란 다산의 부인 풍산 홍 씨가 시집 올 때 입고 온 붉은색 치마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제대로 쓰자면 홍군(紅裙), 즉 '붉은 치마'라고 써야 옳지만 이는 해석하기 나름으로는 '기생'이라는 다른 뜻도 있기 때문에 그냥 붉을 하(霞), 즉 노을 하를 써서 '하피(霞帔)'라고 한 것이다. 한편 그로부터 3년 뒤 다산은 시집 간 외동딸이 눈에 밟혔던 모양이다. 서첩을 만들고 남은 천 조각에 한 해 전에 혼인한 외동딸에게 줄 그림을 그렸다. 꽃이 벙근 매화 가지에 올라탄 멧새 두 마리를 그려넣은 '매조도(梅鳥圖)'(고려대박물관 소장)가 그것이다. 유배 시절..

[문화유산 답사기]의성·안동·상주에서 만나는 돌탑의 세계

문화유산 답사기 2020. 12. 21. 까치발로 키를 높이고, 털을 빳빳이 세우고, 공기를 힘껏 들이마신 동물의 모습은 고려시대 사병으로 무장하고 서로를 견제하던 호족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이 시주자로 동참한 불사에도 이런 경향들이 반영되어 자유분방하면서 독특한 거대한 마애불들이 조성되었다. 자연암벽에 부처님 상호를 제외한 부분을 가능한 큼직하게 선으로 새겼다. 그래도 상호 만큼은 정성들여 따로 만들어 올렸다.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과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은 이런 시대배경이 만들어낸 독특한 양식의 부처이다. 이 두 마애불을 연속으로 지면에 소개하고자 한다.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보물 제115호)은 연미사에 있으며 ‘제비원 미륵불’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참배객들이 2열로 절할 수 ..